『농부』는 별다른 기교 없으나 농촌실상 잘 그려|곳곳에 진실 스며든 『달밤에』 경건함 일깨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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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접수된 작품을 음미해 가노라면 지은이의 여러 마음자리가 환히 보인다. 제법 시조의 리듬을 굴릴 줄 아는 이가 뚝딱하고 지어보던 시조도 있고(깊이가 없다) 그리 큰 재주는 없으나 온 정성을 다해 밤을 새운 작품들도 있다.
대개 이런 작품은 진실이 작품 속에 배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자에게 적지않은 감동을 준다. 여기에 시적 기교와 참신성까지 깃든 작품이라면 오죽 좋겠는가.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선자는 이런 작품을 대하면 지루하거나 피로하지가 않다. 적어도 응모하는 작품은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같은 작품은 자신이 있고 마음자리가 선명하게 마련이다. 이번주엔 새얼굴을 몇분 선보이기로 한다. 참신성은 덜하나 진실과 리듬이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농부」는 큰 기교없이 농촌의 실상을 그리고 있는데, 대종당의 「논배미」 짙은 그늘을 햇살 안고 바라본다」에선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경지 같은걸 느낀다.
「농부가」의 각자는 숙명처럼 감수하는 삶이 안정감을 준다. 종장들이 다 그렇다. 그러나 관념적인 흐름이 아쉽다.
「달밤에」는 선자에게 경건함을 일깨우고 있는데 아마 작자는 일곱 고아를 등장시키고 있는 듯. 곳곳에 진실이 배어있다. 그만큼 아프다. 「무주구천동에서」는 비교적 기행시조로서의 면모를 갈 보여주고 인근 시조의 율격은 무리없이 구사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감각의 새로움도 함께 구사했으면 한다.
「여름밤」은 또한 만수로서 상을 차분하게 이끌고 있는데 종장의 「이밤 내 엉킨 매듭을 낙수따라 풀고 있다」에서 비오는 밤의 정경을 잘 낚아채고 있다.
「산사에서」는 불가의 어느 경지를 느끼게 한다. 다만 기성인의 상과 어휘가 걸린다. 그러나「한시름」 굴레밖에 정좌한 밝은 찰나, 다 비운 가슴 채워줄 신명들이 내린다」는 찌어나다.
「파도」는 그 출발이 확실하고 좋았으나 중·종장이 뒷받침을 못하고 있다. 종장의 탁월한 묘미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먹물」은 먹물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자세가 맘에 들었다. 종장의 「안개가 걷히는 이 아침엔 나도 한폭치고 싶다」에선 기개같은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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