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깊이보기: 템플 스테이 폭발적 인기

'나'를 비우고 '나'와 다시 대면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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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02년 월드컵 대회 당시 외국인에게 한국불교를 소개하려는 소박한 의도에서 시작된 템플스테이(Temple-stay)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에게는 한국문화의 진수를 살펴볼 수 있는 체험여행 상품으로, 내국인에게는 주5일제 근무와 함께 찾아온 여가를 '참 나'를 찾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시행 4년 만에 불교계 안에서조차 깜짝 놀랄 파장을 일으킨 템플스테이. 왜 현대인은 산사를 찾는 것이며, 불교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산사에서는 자명종이 필요 없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도량석이 울리기 때문이다. 사찰 구석구석에서 허공을 울리는 잔잔한 목탁 소리가 잠을 깨운다. 아니 세상을 깨운다.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를 정리하고 세면을 마칠 즈음 범종각에서 우렁찬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이 종소리를 듣고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염원하며 발소리를 죽인 채 법당으로 향한다. 조용히 자리하며 자신과의 대면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침 예불이다. 근심.걱정을 털어내는 108배를 올리고 고요함에 머무는 참선, 이어 한층 가까이 내려앉은 별들의 인사를 받으며 새벽 숲길 걷기 명상을 한다. 숲속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면 산새들이 일어나 아침 인사를 건넨다. 이때쯤 여명이 밝아온다.

템플스테이는 단순히 '절에서 머무르기'가 아니다. 자연 환경과 불교 문화가 어우러진 사찰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며 마음의 휴식과 전통문화를 느끼게 하는 문화 프로그램이다. 이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내.외국인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체험하고, 기업이나 단체가 연수 프로그램으로 채택한다. 또 일반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템플스테이를 가르치기도 한다. 획일적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전문화한 '맞춤 템플스테이'도 등장했다.

특히 외국인에게는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다가갔다. 주한 외국 대사들과 외국인 CEO, 언론인 상당수가 해마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템플스테이가 한국 관광의 메리트로 소개될 정도가 됐다. 템플스테이가 참여를 통한 체험형 상품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 마가 <마곡사 포교국장·템플스테이 지도법사>

템플스테이는 불교의 본질을 사찰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으며 한국문화의 진수를 맛볼 기회를 제공했다. 즉 조용히 사색하며 명상하는 사찰 체험 여행은 볼거리 중심의 관광 여행에서 벗어나 대안 관광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불과 3~4년 사이에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참가자 대다수는 '쉬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복잡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하는 것이 산사를 찾는 근본 이유다.

세상은 갈수록 어렵고 복잡해져 가고 있고. 거기에 맞춰 사람들도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져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여유를 잃고 삶의 원동력이 소진돼 결국에는 정신적 탈진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가정도 더 이상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성적 경쟁에 내몰린 자녀와 부모 간에 인간적 대화가 끊긴 지 오래다. 그래서 잠시라도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 머물면서 현실에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글자 그대로 쉬고 싶은 것이다.

가정에서 편안함을 얻지 못하고 직장에서는 무한 경쟁에 시달리는 개인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없이 받아주는 산사를 찾게 된다. 경쟁하고 끊임없이 능력을 드러내야 하는 세속의 삶과는 반대로 나를 돌아보고 비우라는 말을 하는 사찰에서 잠시나마 긴장된 나를 잊는 시간을 갖고 싶어한다. 또한 일이 우선이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나 아닌 나'로 살아가고 있기에 '참 나'의 모습에 목말라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점차 정착되면서 템플스테이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주5일 근무제의 도입은 단순히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라이프 스타일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노동 중심 사회에서 여가 중심 사회로 변화하면서 여가를 자아실현과 재창조의 동력을 충전하는 데 쓰고 싶은 것이다.

최근 웰빙 열풍도 템플스테이의 성장에 한몫하고 있다. 채식 위주의 사찰 음식과 발우공양법, 산사의 생활 방식은 생태주의와 일치하는 웰빙적 삶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들이 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찾기도 한다. 지속된 경기 침체에 시달린 이들도 템플스테이를 찾는다.

템플스테이의 제목도 '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바뀌는 추세다. 프로그램은 사찰마다 차이는 있지만 절에서 이뤄지는 예불.108배.명상 등 침묵으로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또한 내놓지 못하고 마음에 간직해 둔 것이나 현재 내게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심성수련도 경험한다.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예불에서는 종교를 떠나 한 위대한 성인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시간이 된다. 108배는 눈앞에 보이는 부처님이라는 불상에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완성된 부처님으로 동시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절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다. 새벽 숲길을 걷는 명상이나 좌선을 통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이나 느낌을 알아차리는 체험을 한다. 이런 침묵의 시간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고 정화하게 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조용해지면 일상 생활에서는 놓치고 있거나 애써 덮어두었던 작은 아픔이나 상처들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심성 수련으로 풀어낸다. 가족에게 받았던 상처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오열하기도 하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차분하게 돌아보고, 삶을 마무리하는 유서를 써 봄으로써 남은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된다. 마음에 묶어 두려고 애써 왔던 많은 기억이 풀려 나오면서 한층 가볍고 편안해진다. 이러한 상황은 다시 명상이나 예불 등 침묵의 시간으로 이어져 내면의 평화로움으로 정착된다.

이처럼 침묵의 시간과 표현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되고, 나아가 함께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만나고 나눌 수 있게 된다. 나 혼자만의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만남을 경험하는 것이다.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사찰에 와 더 많은 걸 느끼기 위해서는 여행 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저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저절로 많은 것을 가져간다. 그것은 무엇을 애써 배우려 해서 익혀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판단하거나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터득하기에 스스로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보리밥 집에서 쌀밥이 없다고 투덜대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보리밥을 맛있게 먹을까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템플스테이에 참석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모든 과정을 무조건 직접 체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 속에서 바라보는 과제와 직접 해 보는 과정은 확연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8배를 하기 전과 하는 도중, 하고 나서의 느낌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산사의 생활이 시작되면 먼저 휴대전화.담배를 회수한다. 수련복으로 갈아입으면 복장이 주는 형식과 체면의 이탈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사찰 안내를 받고 사찰에서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배운다. 걸음걸이, 묵언, 차수, 절하는 법, 밥 먹는 법 등 모든 게 낯설다. 사회에서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해야 한다. 평균 1박2일(토.일요일) 일정인 템플스테이.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참가자들은 많은 것을 체험한다. 분명한 것은 생활이 바뀐 것이고, 이것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실제 자신의 생활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게다가 과정 하나하나가 마음과 연관돼 있다는 걸 보게 되면 큰 수확이다.

한편 템플스테이는 불교 내부적으로도 변화를 가져왔다. 객실 문화의 소생이다. 사찰의 객실은 본래 해제 철에 만행하는 스님들을 위해 준비됐던 것이다. 이것이 점차 기도와 참배의 목적으로 절을 방문한 스님과 신도들과, 절과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도 편의를 제공하면서 방문객을 위한 별도의 공간으로 만들어져 왔다. 이처럼 특수한 인연의 소수에게만 주어진 객실 문화의 혜택이 템플스테이를 분기점으로 일반 대중에게 확대된 것이다.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중요한 매개체가 마련된 것이다.

소박한 산사 체험으로 시작한 템플스테이는 이제 민족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수천 년 불교 전통을 어떻게 현시대의 문화적 코드로 풀어낼 것인가 하는 숙제를 남겨 놓고 있다.

마가 <마곡사 포교국장·템플스테이 지도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