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입시, 일상이 되어버린 비극을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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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한나
부산대 교육학 석사

매년 11월이 되면 한파가 온다. 수능이 가까웠다는 징조다. 나는 2007년에 수능을 치렀으니 이미 꽤 지난 일이다. 그래도 그날이 오면 초조히 혹은 초연히 그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에 대한 생각으로 내 가슴은 울렁인다. 개인적으로는 살 떨리는 경험이었다. 그 수능은 올해도 어김없이 치러졌고, 어김없이 수험생 중 일부는 그 좌절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나 그런 뉴스에 대한 시선은 날이 갈수록 차가워지는 것 같다. 고작해야 ‘이게 전부가 아닌데,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니’ 정도의 댓글, 혹은 안타까움의 반응들. 더 이상 수험생의 자살은 특별한 사건이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로 비극적인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 공교육의 수많은 문제들을,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 행복지수 꼴찌라는 불명예스러운 조사 결과를 보고도 그저 혀를 끌끌 차며 재빨리 다른 뉴스로 시선을 돌려 버린다. 고작 보강되는 건 자잘한 입시전형의 변화, 학교 내 프로그램의 강화 따위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건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체념만 할 뿐 해결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이 사회는 산적한 근본 과제들을 회피한 채 아이들을 향해 이 체계에 적응할 것을 종용하고 있고, 그 분노를 미국인도 못 푼다는 외국어영역 32번 문제의 ‘미친’ 난이도에 쏟게 한다. 그러는 사이 매년 자신이 그 적응에 실패했다고 여기는 수험생들의 생명은 스러져 가고 있다.

 이 고질적인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 우선시해야 할 것은 ‘어떤 입시제도여야 하는가’보다 ‘어쩌다 우리는 이토록 입시에 목을 매게 되었는가’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력만능주의와 이를 둘러싼 각종 이해관계, 사회적 시선 등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 없이는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고, 긴 시간을 두고 서서히, 그러나 중단 없이 해결해 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지속적으로 수험생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한낱 댓글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게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이게 결코 인생을 결정짓는 단 하나의 잣대가 아님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끝없이 한 명 한 명의 죽음에 아파해야 한다. 그 고통을 동력 삼아 실효성 있는 해결방안을 머리 맞대고 숙고해야 한다. 손대기 어려운 문제라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이한나 부산대 교육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