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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 주가 상승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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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증시의 주가가 실물경제와 따로 놀고 있다. 현실경제는 침체의 바닥을 기고 있는데도 종합주가지수는 나홀로 고공비행 중이다. 종합주가지수는 7월 중 100포인트가 올라 1100선을 넘어섰고 역사상 최고점을 돌파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의하면서 "주식시장이 1000포인트를 넘어 안정되는 것을 보고 이제 정치구조 얘기를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주가는 대체로 경제성장률과 함께 움직인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넘어선 경우는 1989년 '3저 호황'말기와 94년 반도체 호황, 그리고 99~2000년의 정보통신(IT) 호황 등 세 번 있었다. 당시 성장률도 대부분 9%대였다. 그래서 증시는 경제를 비추는 거울로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딴판이다. 경제성장률이 3년째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침체 속에서 주가지수만 치솟고 있다. 경제가 좋아져 주가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불황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이변이다.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주가 상승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역설이다.

현재의 주가 상승이 한국 증시에 대한 재평가 과정의 일환이고, 하반기 우리 경제에 대한 안팎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해외의 시각은 여전히 차갑다. 성장률과 투자 및 소비 회복 전망 모두에서 유보적이고. '북핵보다 재벌의 지배구조가 투자에 더 큰 걸림돌'이라는 시각 또한 변치 않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증시가 '확신 없는 유동성 랠리'를 보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풍부한 국제유동성에 힘입은 글로벌 머니게임 때문이다. IT거품 이후 새 산업이 나타나지 않아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들이 대거 증시로 몰리면서 세계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투자 위축이 증시를 떠받치는 기현상이다. 외국인 지분이 40%대에 이르는 한국 증시가 이 머니게임에서 예외일 수 없다.

게다가 투자 의욕을 잃은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여유자금으로 자기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주가를 받치고 재테크에 열을 올린다. 적립식 펀드 등으로 주식투자자가 늘어나면서 기관의 매수여력이 생기고 증시에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시장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불황 속 유동성 랠리가 만드는 고주가는 각별한 경계를 요한다. 우선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주가 상승에 스스로 한계가 있다. 기업들이 설비투자 대신 자사주 매입이란 재테크에 몰두하면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이는 장기적으로 저성장의 고착화로 이어질 위험 또한 다분하다. 더구나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글로벌 머니게임에서 한국은 아직은 아마추어다. 주식시장의 주력이 개미군단에서 적립식 펀드와 연기금으로 바뀌고 있지만 고도의 심리전술로 치고 빠지는 외국인 군단의 전술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부동자금을 대책 없이 증시로 몰아넣을 경우 산업자본화는커녕 머니게임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우리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자본파업'이란 지탄을 받을 정도로 계속 저조하다. 당국의 규제 때문에, 노사관계를 겁내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투자를 하려야 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생산거점에다 소비마저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성장동력을 새롭게 추스르는 일만큼 화급한 국가적 과업도 없다. 주가는 항상 오르내리고 좀 올랐다 하면 일반투자자들도 경계심을 갖는다. 경제침체 속에 증시 활황이 무척 반갑기는 하지만 주가지수의 고공행진만 보고 경제는 잘 굴러가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국가 지도자로서 이런 오판이 없다. 지금 모두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정책불안형 장기불황이다. 투자를 왜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지만 말고 투자를 가로막는 정책의 불확실성과 불안.불신 등 '3불'을 먼저 제거해 주어야 한다. 이는 지역대결구도 극복보다 더 급하다. 주가지수만 믿고 남은 임기를 정치게임에 몰입한다면 그야말로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란 지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변상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