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고치라는데 왜 주저하는가|일본인이 본 일 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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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 교과서의 사보왜곡 문제가 한국이나 중공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비판과 합의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은 흡사 뭇매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자기모습을 확인하려 할 때 거울에 비춰보는 수밖에 없다.
교과서 문제는 아시아 인근 국민들의 눈에 비치는 현재 일본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불행한 과거」를 기회 있는 대로 자기 형편에 좋도록 고쳐 써버리자는 독선적이고 방심을 허락 치 않는 일본의 모습이다.
교과서문제는 한국·중공으로부터의 정식항의로 이미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외교문제가 되어버렸다. 한국과는 1년에 걸친 경협문제, 중공과는 오는 9월의 「스즈끼」(영목선행)수상 방중계획이라는 과제를 안고있는 일본정부는 드디어 교과서를 다시 고쳐 내용을 시정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기울이고 있다고 8일자 일본신문들은 전했다.
과거 한국·중국·일본에서 공통으로 가르쳤던 「논어」에 「잘못을 고치는데 주저하지 말라』 (과칙물탄개)라는 말이 있다. 지금 일본정부에 요구되는 것은 아시아근린에 비치기 시작한 일본의 모습을 직친,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솔직한 태도다.
일본정부·자민당이「편향교육시정 의 이유로 교과서의 감정강화에 착수한 것은 재작년의 중·삼의원 동시선거에서 압승한 이래의 일이다.
「침략」을 「진출」로, 「토지탈취」를 「토지에 관한 권리상실」로, 그리고「독립을 외치는 집회·데모」를「데모와 폭동」으로 고치도록 하여 현재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고있는 것도 상정노선 강화의 일환이었다.
한국의 신문독자들에게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을지 모르나 지난 6월26일의 일본 유력신문은 『내년 4월부터 사용되는 재 교과서의 검정이 끝났는데 그 내용은 더 더욱 전전일본을 긍정하는 색채가 강화됐다』라고 일제히 크게 보도, 문부생의 교과서 통제 강화를 비관했다.
이에 대한 문부생 당국의 답변은『외국의 교과서에는 자기 나라가 이곳저곳을 침략했다고 일부러 쓴 것이 없다』 고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던 것이다.
9월에도 중앙교육심의회의 건의에따라 한층 더 교과서 검정을 강화하려했던 일본 문부성의 은밀한 계획이 크게 얻어맞은것은 한국과 중공 두 정부의 잇단 공식합의와 내용시정요구 때문이었다.
8윌6일 일본 국회심의에서 야당 질의에대해 「오가와」(소삼평이) 문부상이『변명할수도 없는 침략전쟁이었다』고 답변, 「진출」이라는 단어를 문부상 자신이 사실상 수정한 것은 중공과 한국 두 정부의 예상밖의 강력한 합의에 동요의 흔적을 감추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발언은 일본정부가 교과서문제를 심각한 외교문제로 받아들이고 그 차원에서 사태수습을 할 용의가 있음을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나 중공으로부터의 정면합의를 기다릴것 없이 자신이 스스로 교과서의 개악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이를 못한 일본인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제 와서 일본내부에서도 내용을 시정해야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그 때문에 정부의 대응자세에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측면을 한국국민들이 알았으면 한다.
8윌5일 한국정부는 일본의 고교 역사·사회교과서 16권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한우도관계 부문에서만 『뿌리깊은 편견에 의해 왜곡된 곳이 24개 항목에 달했다』는 것을 상세히 밝혔다.
현재 외교문제가 된 것 외에 다시 양국에 관계되는 역사의 기술문제가 한국 측으로부터 재기된 것이다.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문제는 일본측에서 본 한국 교과서에도 없을리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일 쌍방의 전문가가 서로 문제점을 제시, 대화의 광장을 마련한다면 이는 참으로 시의에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측도 적극적으로 문제되는 것을 들추어 내어 교과서 문제가 외교적 처리에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두 나라 사이에 서려있던 문제를 타개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7월31일자「중앙일보」는 주말정담 칼럼에서 『교과서를 왜곡한 쪽에 일본의 친한파 의원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일한의원 연맹에 이름을 나란히 올리고있는 일본측 의원의 이름을 일일이 들지는 않지만 일본정부에 대해「고도의 정치절단」을 요구, 문제해결에 애쓰는 일중 우호의원연맹과 비교할 때 일한 의원연맹측은 확실히 모르는 척 시치미를 때고 있다.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 라는 격언에 비추어 볼 때 움직일 기색조차없는 이 연맹의 일본측 의원을 무엇이라 평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논어를 한귀절 더 인용하자. 참으로 「교언령색이 척은 것이 인」(교언령색 선의인)이다.
여기서 일본측 의원에게 「교언령색」의 비판까지는 삼가지만 17년전 한일국교정상화때 일본정부가「불행한 과거를 깊이 반성」했다는 것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교과서문제 발생 이래의 일본정부의 대응자세를 보면 모처럼의 과거의 반성도 「교언령색」의 유로 보어 같은 일본인으로서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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