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 북한, 경수로 추가 요구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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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제4차 북핵 6자회담 엿새째를 맞아 남북한과 미·중·일·러 6개국 차석대표들이 공동발표문에 대한 협의를 했다. 보도진이 베이징 국제구락부(세인트 레지스호텔)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북한이 '중대 제안'에 '경수로'를 맞세웠다. 중대 제안은 미국이 반대하는 경수로 사업을 폐기하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전력을 북한에 송전해 북핵 해법을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복안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대북 송전은 고맙지만 경수로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정부가 중대 제안의 전제인 경수로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북한에 카드를 공개함으로써 북.미 간 경수로 갈등을 6자회담장의 새 이슈로 등장시켰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 북, 경수로 왜 요구하나=당국은 경수로 완공 요구가 북한이 계속 주장해 온 '핵 주권' 선상에 있다고 본다. 핵무기 폐기 용의는 있으나 핵에너지의 개발.이용 권리는 당연히 보장받겠다는 것이다. 향후 북핵 문제가 잘 해결되더라도 북한 내 각종 원전 가동을 보장받아 자주적인 에너지 수급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백남순 북한 외상의 지난달 29일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용의' 발언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NPT 체제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은 허용한다.

또 '경수로 대신 전력'이라는 중대 제안에 대해 경수로 건설을 고집한 것은 '전력+α'를 제시, 협상에서 우선적인 체제 보장과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려는 외교술이라는 분석도 있다. 200㎾ 송전 및 건설비용은 약 2조5000억원, 경수로 완공 비용은 약 24억달러로 북측 요구를 들어 줄 경우 5조원 정도 필요하다. 여기에 대북 송전은 북한이 '에너지 주권'을 남한에 넘겨주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북한 정권 내에서 나왔을 수 있다.

경수로는 외부에서 수입하는 화전용 중유나 남한이 주는 전력과 달리 핵연료(농축 우라늄)만 확보되면 북한이 자체적으로 가동을 통제할 수 있다.

◆ 한.미는 수용 불가=부시 행정부는 경수로를 클린턴 행정부의 실패한 북핵 해법으로 낙인찍었다. 북.미 양자협상을 통해 핵 동결의 대가로 200만㎾의 경수로 건설을 약속했던 '제네바 합의'는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 추진과 핵보유 선언 등 북한의 약속 위반으로 파기됐다고 본다. 외교부 당국자는 "경수로는 이제 미래가 없다고 공언했던 미국이 경수로 재론을 받아들이겠는가"라고 했다. 6자회담이 시작된 배경 역시 제네바 합의 같은 북.미 양자협상으로 북핵을 해결할 수 없다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또 2000년 미국 핵확산금지교육센터(NPEC)가 "경수로를 초저 출력으로 단기 가동하면 무기급 플루토늄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경수로가 재론되면 미국의 매파가 문제삼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난감하다. 중대 제안에 대해 송전 대신 경수로 건설을 중지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미국을 설득한 게 우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수로 건설 비용으로 전력 송전 비용을 마련한다는 계획에도 부담이 생긴다. 그러나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지난주 남북 양자접촉에서 "전력 송전을 제시한 한국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했던 점을 주목했다. 북한을 설득할 여지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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