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이나 「진출」 등 어휘보다 교과서 전체의 향방이 문제"|일본 교과서를 말하는 일본 학자들의 긴급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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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서면=중앙일보사에 의해 이 자리가 마련 됐습니다. 교과서 문제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줄 압니다만 용어의 문제라기보다는 본질적인데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일본에서도 양식을 대표하는 여러분을 모시고 한일간 논의의 대상이 되고있는 교과서 문제를 음미해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학계에서 공헌이 크신 「와따나베」 선생부터 얘기를 시작하시죠.
▲도변학=여기는 문화 강연회도 아니니까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우선 나는 교과서 검정에 대한 일본 문부성의 주장도 어느 정도 맞으며 무리하게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합방에 논의의 여지도 있고 문부성 공무원으로서의 입장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침략」을 「진출」로 했다든가 하는 문제보다 문부성이 문제로 보지 않고 있는 문제, 즉 교과서 전체가 잘못돼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 교과서는 일본 문화가 중국에서 조선을 경유해 들어 왔다고 쓰고 있어요.
그렇다면 한민족은 우편 배달부란 말인가요. 한민족은 중국 문화를 자기 문화로서 소화시켜 그것을 일본에 전한 것이지 중국 문화를 그대로 배달한 것은 아니에요.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용어보다 이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또 한가지 일본 교과서는 한일 합방 후 도로가 생기고 철로가 건설됐으며 사업이 진흥됐다고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뒤에는 폭동이 있었다고 쓰고 있어요.
이 글을 읽은 학생이 『좋은 정치를 했는데 왜 폭동이 일어났느냐』고 물을 경우 이 교과서로는 대답을 하기가 어려워요.
▲최=어느 민족의 교과서도 자기 민족의 아름답고 바른 것을 강조하기 위해 다소는 내셔널리스틱한 것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숙명을 안고 있긴 합니다.
문제는 제3자가 이것을 보고 『이상하다』 『좋지 않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웃긴다』고 하는 것이 된다면 가르치는 내용이 의미를 잃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천황 찬미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웃는 사람은 없어요.
중국 고사에 『사랑해서 그 악을 알고 미워해서 그 선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애정을 위해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일본인들이 현재 교과서를 만들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에 내용까지 편파적으로 만든다면 오히려 세계에서 고립된 인종을 만드는 결과가 되지 않겠습니까.
▲영목탁낭=중공의 이의 제기는 별도로 하고 한국 측에서 나오는 비판은 「3·1운동」「강제 징용」 「침략」 등의 용어가 문제되는 것 같습니다.
「와따나베」 선생이 지적한대로 나도 이것은 자구상의 문제이며 보다 심각한 것은 근세 1백년간 한일간에 인식의 갭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갭이라기보다는 일본측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잘못 돼 있다고 말 할 수 있어요.
문제가 된 교과서 내용은 문부성 관리가 말하는 대로 형식적·논리적으로 설명하려면 실망할 수도 있는 문제예요. 이에 대해 중공은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불만입니다.
현재 「스즈끼」 (영목선행) 내각은 이 문제를 가능한 한 외교 문제화하지 않고 실무 레벨에서 누른다는 방침입니다.
이런 문제는 정치적으로 타결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태도는 약해 보인다는 느낌입니다.
▲금산정영=이제까지의 교과서 내용을 보더라도 잘못된 부분은 많았습니다. 예컨대 6·25동란에 관한 설명을 보아도 한국에 관한 부분은 옳지 않은 것이 많았습니다.
일본 문부성 관료들의 인식 부족 문제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교과서 왜곡의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교과서 문제의 발단은 일본의 내정 문제, 그리고 이데올로기 문제를 안고 있음을 유의해야합니다.
▲등전의낭=일본의 장래를 생각할 때 큰 피해를 주고받은 전쟁은 절대 잊어서는 안될 교훈입니다. 역사 속에서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배워야 합니다.
지금 침략이라는 말에 구애되어 논의가 있지만 과거 일본의 행동은 「침략」입니다.
우리들의 다음 세대에도 「침략」이라는 명백한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교과서의 사명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금산=인베이션이란 영어는 침략으로도, 진출로도 번역할 수 있어요.
일본인들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므로 침략을 진출로 바꾸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2차 대전 후 처음에는 「패전」이란 말을 쓰다가 지금은 「종전」이란 말로 바뀐 것도 그런 예 중의 하나입니다.
▲영목=이 문제는 자구의 문제가 아니고 양국간 인식의 갭이 중요합니다.
나는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총으로 쏜 것이 이 같은 인식의 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내셔널인터레스트 (국철)라는 문제가 있어요. 나도 일본인이니까 일본인의 내셔널리티나 내셔널 인터레스트를 가능한 한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셔널리티는 휴머니티와 등식 관계가 아니면 안돼요.
자기 나라의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 내셔널리티라고는 할 수 없어요.
그것은 내셔널 에고이즘일 뿐입니다. 역시 인류의 이익과 조화되는 국익이 아니면 오늘의 국제화된 세계에서는 통할 수 없어요.
이런 인식에서 우리 자손들에게 문제를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최=나는 외국인으로서 일본의 관료 조직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인간적 사회를 추구』란 항목에서 현대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가 얼마나 의의를 갖고 있는가 하는 설명은 있어도 자유주의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설명은 없었습니다.
6·25가 일어난 것은 선거에서 이승만이 졌기 때문에 통일 여론이 높아져 이 같은 정세를 배경으로 일어났다는 얘기를 쓴 교과서도 있습니다. 이 같은 반 자유주의적인 편향적 이데올로기 교과서가 자민당의 지배를 받는다는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나로서는 궁금한 일입니다.
▲등전=지금 야당도 교과서 문제를 거론하고 있고 한국·중공도 이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는데 일본 자민당은 야당이 주장하는 것은 듣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정치가 개입되면 한일간의 갭을 메우는 대화도 더 어려워진다고 할 수 있지요. 내 생각으로는 일본 야당에 양식이 있다면 이번 문제에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최=옳습니다. 지난 7월1일부터 10일까지 새로 검정을 끝낸 교과서가 전시되자마자 중공에서 문제를 삼았습니다. 교과서를 모두 검토, 고쳐진 곳을 찾아내려면 한달 반 이상이 걸린다는 전문가들의 얘기인데….
이번 한국·중공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는 교과서 내용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태도로 나온 것으로 보십니까.
▲영목=내 생각으로 일본 정부는 시정을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실무자들을 시켜 설명을 한다. 양해를 구한다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흐지부지 끝나지 않을까요.
▲등전=나도 일본 정부가 항의를 받고 교과서 내용을 고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문제가 됐다는 자체는 일본인들이 다시 한번 2세에 대한 교육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금산=나도 교과서가 시정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만….
▲최=이번에 평소 의견이 맞지 않던 남한과 북한이 일본에 대한 교과서 비관에 대해서는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일본인들로서는 어떻게 느끼십니까.
▲등전=이 문제는 남·북한이 갈라지기 전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금산=역시 그렇게 봅니다.
▲영목=내가 몇마디 더 보태겠습니다. 최근의 한일 관계를 얘기하자면 한일 협정을 체결하기 전『「구보따」 발언』이라는 문제가 있었고 그후에도 김대중 사건, 문세광 사건 등 고약한 일이 잇달아 일어났지요 이런 것이 모두 한국과 일본간 인식의 차이 때문으로 보는데 한일 합방 경위에 대해서도 이것이 지적될 수 있습니다.
일본에는 원래 「병합」이란 말이 없었는데 명치 42년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이 말이 생겼습니다. 이 조약 제1조를 보면 한국이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하는 것으로 돼 있고 제2조는 일본 천황이 이를 승낙한다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것을 한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이런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는게 문제입니다.
▲최=현재 일본이 이란, 이라크 전쟁에 대해 어느 쪽에도 「침략」이라는 용어를 안 쓰고있는데 이 두 나라 관계는 일본으로 볼 때 모두 제3자로서 아무 관계가 없지만 한일 관계는 다르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한일 관계에서는 과거의 역사가 있으니까 다른 나라의 얘기를 들어 한일 관계를 비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나온 얘기를 한마디로 정리하고 오늘 얘기를 끝내지요.
오늘 결론은 결국 정치가는 정치가로서 교과서를 생각하지 말고, 집필자는 이데올로기로써 교과서를 생각하지 말며, 올바른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얘기로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참석자>
▲금산정영 (전 주한 일본·국제 관계 공동 연구 소장)
▲등전의낭 (매스컴 종합 연구 소장)
▲도변학 (무장대 교수·역사학)
▲영목탁낭 (한일 신문 편집 위원)
▲최서면 (한국 연구 원장·사회)

<정리=신성순 특파원>
◇일시=7월30일 하오 7시
◇장소=동경 한국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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