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성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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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홍글씨』는 한 소설 제목이다. 미국 작가 「너대니얼·호돈」의 1850년도 작품, 『스칼리트·레터』-.
그 제목은 유래가 있다. 아마 그 무렵 미국의 청교도들은 부정한 여자에게 평생 주홍빛의 「A」를 옷에 달고 다니도록 했던 모양이다. 어덜터리 (adultery=간통)의 약자. 이 소설의 주인공 「헤스터·프린」은 사생아를 가진 음녀였다.
각설하고-, 요즘 바로 그 『주홍글씨』라는 별명을 가진 제3의 성병이 등장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선 법석이다. 주간 잡지 타임은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미국 안의 환자 수만 해도 2천만명. 10명 중 1명 꼴이다. 1천만명은 신환.
병명은 「헤르페스」 (herpes). 바이러스성. 물집 같은 것이 생기는 포진의 일종이다. 입술이 부르트는 경우와 비슷하다.
다른 성병, 이를테면 임질이나 매독처럼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안심도 못한다.
한 의학자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헤르페스가 당신을 죽일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 역시 그 병균을 죽일 수 없다.』
따라서 「최악의 성병」이라는 진단도 내리고 있다. 내버려두면 오히려 임질이나 매독 이상의 해독이 있다는 경고.
헤르페스의 전염 과정이 놀랍다. 놀랍다기보다 망신스럽다. 문란한 성생활과 오럴 섹스가 폭발적인 감염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미 사람들, 아니 현대인의 내면적인 생활을 보는 것도 같다. 성을 쾌락만의 전유물이라는-.
하긴 헤르페스의 역사는 길다. 2천년 전에도 그런 기록이 있다. 고대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는 헤르페스의 전염을 막기 위해 키스 금령을 내린 일도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헤르페스에 감염된 입술 얘기가 나온다. 프랑스에선 그것을 『여성의 직업병』 (프로페쇼넬 말라드)이라고도 한다.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발견은 1940년, 분리 배양은 1960년대. 의사들은 70년대까지도 그것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었다.
헤르페스 환자들은 따끔따끔하고 못 견디게 가려운 중상 못지 않게 정신적인 쇼크가 더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타임지는 비유하기를, 애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심정이라나. 단순히 비통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허탈감, 소외감, 고독감, 때로는 절망감과 불능감 (임프텐츠)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선 요즘 별난 에디케트도 다 생겼다. 이성과 만나면 얼굴도 붉히지 않고 『헤르페스를 가졌어?』라고 미리 묻는다는 것이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쾌락은 행복의 시작이요,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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