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 이 사람!] '태화강 청소부'가 즐거운 사장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27일 오전 11시쯤 울산 로얄예식장 아래 태화강 한복판에 떠있는 12t짜리 수중청소선 위. 뙤약볕에 온몸이 시뻘겋게 탄 50대 남자가 강바닥에 묻힌 폐그물을 묶은 크레인을 가동한다. 하지만 바닥 흙 속에 묻혀있던 그물은 10㎝도 채 못 올라와 지지직 찢어져 버린다.

"아이고~ 다시 묶어야겠네."곁에 섰던 아낙네가 찢어진 그물 조각을 잽싸게 떼어내고 묶었던 밧줄을 인부에게 건넨다. 40여 분간 일곱 차례나 찢어지고 다시 묶기를 반복한 끝에 두 아름 남짓한 폐그물이 갈기갈기 찢긴 채 인양됐다. 아낙네는 힘에 부치는 듯 주저앉는다.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흙탕으로 얼굴과 옷이 시커멓게 얼룩졌지만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울산의 젖줄 태화강 17.2㎞(범서 선바위~강하구 방사보) 수중 청소에 나선 심상국(59).김순이(55)씨 부부.

17년 동안 이들이 태화강.회야댐에서 치운 수중 쓰레기만 5t트럭으로 1000대 분이 넘는다.

올 들어서는 3월부터 날가 궂은 날만 빼고 매일(월~토) 오전 9시쯤 태화강으로 나와 오후 4시까지 건축 폐기물 등 각종 물속 쓰레기를 건져내고 쇠말뚝을 뽑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쓰레기를 치울 때 이들은 영락없는 청소원 행색이지만 심씨는 종업원 70여 명을 거느린 중소 조선업체(미도선박) 사장이다. 심씨에겐 회사 일이 오히려 뒷전이다.

"10년쯤 전부터 회사 출근은 일주일에 한두 번 짬짬이 해요. 봉사활동을 마친 뒤 저녁 무렵에 갈 때도 있고…. 일한 만큼 보너스를 주는 체제를 만들고 나니 회사 일은 직원들이 알아서 잘해주더라고요."

연간 수천만원씩 들어가는 수중 청소 비용도 12년간은 전액 사재로 해결해 왔다. 손수 1억2000여만원짜리 청소전용선을 만들어 가동하고 트럭(1대), 포클레인(임차), 인부 일당, 자원봉사자들의 밥값.회식비 등도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썼다.

그의 이런 선행이 알려지면서 5년 전부터는 울산시가 매년 500만원씩 지원했다. 올해는 3500만원의 특별지원금이 나와 부담이 좀 줄었다.

강한원 울산시 환경국장은 "입찰에 부쳤다면 방사보 부근 쇠말뚝 2000여 개를 제거하는 데만 10억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라며 "자원봉사라서 예산 규정상 더 지원할 수 없는 게 민망할 뿐"이라고 말했다.

심씨가 태화강 수중 청소를 시작한 것은 1988년 5월, 홍수 때 태화교 교각에 걸린 건축 폐자재 등이 1년 넘도록 방치되는 것을 보다 못해 10여 명의 이웃과 함께 걷어내면서부터.

"회사에서 3t짜리 보트를 가져와 일주일간 출근도 하지 않고 쓰레기를 치웠더니 고향을 위해 뭔가 했다 싶어 마음이 뿌듯해지더군요."

지난 5~6월엔 박맹우 시장을 비롯한 시청 과장 이상 공무원 80명이 심씨와 함께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심씨는 "누군가는 해야할 일인데 경제적.시간적으로 내가 그런 일을 하기에 적임자라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사진=이재동 사진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