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운영 전 미림팀장 자해하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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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분당 서울대병원 수술실 앞에서 기자들이 자해 소동을 벌인 공운영씨에 대해 취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안기부에서 비밀도청을 전담한 미림팀장 공운영(58)씨는 선린상고를 졸업한 직후 공채를 통해 안기부 9급 요원이 됐다. 공씨는 대공정책실에 근무하던 1992년 미림팀장으로 임명됐다.

공씨는 26일 기자들에게 전달한 자술서에서 "직접 요원들을 선발해 훈련시킨 뒤 본격적인 도청업무에 나섰다"고 밝혔다. 협조자들로부터 전해듣는 형식에 머물러 있던 요인 동향 보고를 '과학화'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게 공씨의 설명이다. 미림팀의 활동은 김영삼 대통령 당선과 함께 일시 중지됐다. 팀원들과 함께 일정한 업무 없이 방치된 것에 항의하던 공씨는 팀장에서 평직원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공씨의 전성기는 94년 인천지부장이던 오모씨가 대공정책실장으로 부임하면서 찾아왔다. 그는 매일 저녁 팀원 2~3명과 함께 한정식집.술집 등으로 작업을 나가 정계.재계.언론계 인사들의 대화내용을 현장에서 도청하는 작업을 지휘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녹취록은 곧바로 오 실장에게 보고됐고, 이는 다시 이원종.김현철씨 등 권력 실세에 전달됐다고 한다.

정권이 바뀐 98년 초 직권면직당한 공씨는 소송을 제기해 2003년 복직 결정을 받은 뒤 곧 명예퇴직했다.

공씨는 99년 12월 온세통신의 국제전화 및 시외전화망 가입대행 회사인 인우정보통신을 설립했다. 가입자의 전화사용량에 따라 통화료의 10~15%를 수수료로 받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공씨는 국정원을 주 고객으로 큰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부 해직자 모임인 '국가사랑모임'의 한 회원은 "공씨가 퇴직 후 국정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면서도 국정원을 상대로 전화사업을 벌여 그 배경이 궁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씨는 "퇴직금으로 설립한 회사의 월수입은 1800여만원 수준이며 직원 월급과 사무실 임대료 등을 주고 나면 매달 수백만원의 적자가 났다"고 해명했다. 공씨는 지난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지원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공씨는 "DJ가 당선되면 또 불이익을 당할까봐 은밀히 선을 댔지만 순수한 민간 차원의 지원"이라고 밝혔다.

지난 24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은 다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 다른 언론사들이 발칵 뒤집어질 날이 있을지 모른다"고 밝혔다.

기자들의 취재 요청을 피해 경기도 분당 자택에 은거해 있던 공씨는 26일 오후 갑작스레 딸을 통해 기자들을 지하주차장으로 불러모은 뒤 A4용지 13장 분량의 친필 자술서를 전달했다. 이 글에서 "(도청과 관련된 내용을) 낱낱이 폭로해 과거를 청산하는 데 역할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 모든 것을 죽음까지 갖고 가겠다"며 괴로운 심정을 드러낸 공씨는 오후 6시15분쯤 흉기로 자살을 기도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임장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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