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집에 있으면서 아들위해 기도하는 친정어머니|남성뒤에는 기도하는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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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나라에서 교회나 절에다니는 사람을 성별로 따져보먼 아마 여성의 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기독교보다 불교의 경우 단연 여신도의 수가 압도적이다. 그것은 아마 기독교의 예배는 공휴일인 일요일에 드리는데 반해 불교에서는 평일에 행사가 많기 때문에 직장을 가진 사람이 못가다보니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일반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에는 남녀구별 없이 함께 참여하지만 가을철에 지내는 고사는 아마 아낙네의 전담이아닌가 싶다.
집안에 아기가 태어났을때 삼신할머니에게 비는 것도 할머니이지 할아버지는 아니다.
버스 운전기사 앞에는 작은 소녀가 무릎을 꿇고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고 기도하는 그림이 붙어있다. 기도는 역시 여성에게 어울리는 것인 모양이다.
이들의 기도가 기복신앙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신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정의 평안과 번영을 위하여 그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를 향해 머리를 굽히고 정상을 드리는 그 마음은 누가 무어라 해도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된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을 보아도 어떠한 형태로든 정성을드리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땅에서 여성이 하는 일 중에는 집안 살림과 자녀 교육뿐 아니라 기도하는 일도 큰 몫을 차지하는 셈이다.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다.
노모가 한달에 한번 절에가시는데 교통편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버스로는 도저히 못가고 택시도 잘 안가려고하는 곳이란다.
어머니의 장남인 친정 동생에게 전화률 하여 차 좀 보내줄 수 없느냐고 사정을 했더니 골프 약속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택시 운전기사에게 갖은 애교와 웃돈을 얹어주고 절에모셔 가기로 했다.
노인이 중얼중얼 기도하시는 것으 들으니 온통 아들 잘 되기만 빌더라는 것이다.
한번은 그 아들이 사업이 여의치 않다면서 어머니에게 각별히 기도해 줄것을 부탁해왔다. 『어디 어디에 있는 공장이 잘 풀리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 어머니는 『그러면 내가 너의 집에 가서 아침 저녁 기도룰 드리는게 더 정성스러운 게 아닐까』했더니 아들 대답이 기도야 아무데서 하면 어떻겠는가. 그냥 누이 집에 계시면서 해 달라더란다.
이 어머니는 아들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만으로도 감격하시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자기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하늘같은 아들에게서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생의 보람을 충분히 느낀 모양이다.
친구 말에 의하면 어머니께서는 아침 저녁 손이 닳도록 아들 사업이 풀리기를 비시더니 몇달후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고 한다.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할머니는 계속 딸집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때 분업 재도가 참 편리하게도 되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도의 효과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도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 효험을 보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말이다.
4월초파일이나 부활절같은날 뉴스를 보면 수많은 여성들이 합장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간절히 애타게 읊조리는 그 여인들의 표정은 참으로 진지하다.
할머니들은 아들을 위해, 젊은 여인들은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리라. 아마 자기 자신이 오래 오래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한다.
위대한 남성 뒤에 훌륭한 여성이 숨어 있다고들 하지만 이 땅의 남성 뒤에는 조용히 기도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마음 든든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간혹, 큰 사건의 여주인공이 종교 단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어 신앙의 순수성에 회의률 갖게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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