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과노력」의 모범 보여 "가업이어 의사되라"충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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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의사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내가 가업을 택한데는 국민학교3학년때 담임이영기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20년도 휠씬전 작고하신 선생님을 그려서 나는 평생 잊지못할 스승으로 감사한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충남서산군시초면의 시초국민학교. 1931년에 입학해서 1937년에 졸업했는데 학교가 드물던 당시엔 시초면은 물론 인근 화양면까지 2개면에 단 하나밖에 없던 교육기관이었다. 10리쯤은 예사고 멀리는 7∼8m거리를 걸어서 통학해야하는 시절이었지만 일본의 압제하에서『배워야산다』는 뜨거운 의식만은 선생님이나 학부형이나 어린 우리학생들이나 한결같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3학년때 이영기선생님이 부임해오셨다.
공주사범특과를 졸업하고 처음 교단에서는 20세를 갓넘은 청년교사였다. 3학년1반 우리담임을 맡으셨는데 성실과 노력의 한 모범이셨다.
스스로 주어진 환경에서 쉼없는 노력으로 발전해가는 바람직한 인간의 전형으로 어린 우리들에게 보이지않는 큰영향을 주었다.
가정방문을 통해 우리집이 한의사집인것을아시고는 나에겐『꼭가업을 이어 의사가 되라』면서「의사의 성질과 인술」을 수없이 강조하셨다. 선생님의 영향으로세브란스의대를 졸업, 의사가 되고 6·25를 만나 피난을 가보니 선생님은 역시 쉼없는 노력으로 정규사범학교를 나와야 가능한 1종교윈자격을 얻어놓고계셨다.
나중 한산국교교장, 충남도학무과장등을 지내시기까지「성실한 노력」의 계속이었다. 55년 황달로 갑자기 별세하셨는데 몇차례 진찰도 해드리고 치료에 성의를 다했건만 50을 갓넘은 나이에 돌아가시고말았다. 요즘 같으면 충분히 나올수 있는 병이었는데 펑생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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