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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이상한 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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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성장기에 들었던 남자들의 관습적 언어 중 납득되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문장이 몇 개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다, 여자는 질투의 화신이다, 여자의 ‘노’는 ‘예스’다 등등. 왜 남자들은 틈만 나면 여성을 폄하하며 열등한 족속으로 치부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남자들 내면의 불안과 분노를 여자에게 투사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까지 저런 문장을 들으면 마음에서 잠깐씩 파도가 일곤 했다.

 그중에서도 성적 뉘앙스를 담아 말하는 ‘여자의 노는 예스다’라는 문장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문장보다 한층 몽매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규정처럼 들렸다. 틀림없이 싫다고 저항하는 여자를 강제로 찍어 누를 때 남자들의 머릿속에는 저런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노!’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굴 수 있겠는가. 사랑 속에 공격성을 섞어 내미는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저런 언어가 통용되는 데는 이상한 심리들이 작용한다. 폭력조차 여자가 원했다고 믿고 싶어하는 자기합리화, 자기 행위에 책임질 줄 모르는 책임회피, 여자를 멋대로 규정하고 통제하려는 불안 심리 등등. 그럼에도 어떤 남자들은 오늘도 “안! 돼요, 돼요, 돼요…” 하며 비아냥거리는 리듬감을 실어 그 문장을 말한다.

 사실 여자들 태도에도 안타까운 점은 있다. 어떤 여자들은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아 남자가 잘못 해석할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오래도록 사회적 물리적 약자로 살아오면서 돌려 말하기, 암시적으로 전달하기, 판단 유보적 태도 취하기 등이 생존법의 일부로 자리 잡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자가 순종적이고 만만하게 여겨져야만 사랑할 수 있는 남자라면 그는 이미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다. 위에 열거된 문장 속 편견들을 진실이라고 믿을 가능성도 높다.

 남자가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더 많은 여자를 갖기 위해서라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그것을 성취하는 합법적이고 공정한 거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사회에 통용되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권력 사용이며, 내면의 불안과 분노를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행위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이들은 여전히 이상한 언어를 사용한다. “그저 예뻐해줬을 뿐이다”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등등. 저 문장들의 근원에는 ‘여자의 노는 예스다’라는 신념이 있는 셈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