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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감동 자원' 왜 활용 안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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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우리나라에 온 에인트호벤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니 3년 전 월드컵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희망과 기대를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요즘 그때가 그립다. 특히 주민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치단체의 무감각 행정을 보며 새삼 그 감동을 생각해 본다.

3년 전 월드컵에서 '4강 신화(神話)'를 창조해 낸 곳은 바로 광주 월드컵경기장이었다. 2002년 6월 22일 스페인과 120분간 사투 끝에 홍명보의 승부차기 볼이 스페인 골 네트에 꽂히는 순간, 전국의 거리에 쏟아져 나왔던 700만 명의 응원단은 지구가 떠나갈 듯한 환성으로 '한국의 저력' '아시아의 힘과 자존심'을 과시했다.

광주 월드컵경기장은 또 사상 처음 월드컵에 출전한 중국이 경기를 치른 곳이어서 중국 측 관심이 높다. 그래서 광주 경기장을 관광자원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운동장 선수벤치 자리에 히딩크 감독의 발 도장을 찍어 두자" "6월 22일을 전후해 세계의 응원대회를 열어 축제화하자"는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필자도 아시아에서 월드컵 4강에 오르는 일은 앞으로 드물 것이므로 경기장 이름부터 과감히 바꿔 '광주 월드컵 4강 진출경기장(약칭 월드컵 4강 경기장)'이나 '아시아의 자존심 경기장'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또 당시 관중석에서 출렁였던 'Pride of ASIA' 카드섹션을 영구 설치하고, 그 아래서 관광객들이 홍명보처럼 볼을 차도록 감동을 연출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광주시는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월드컵이 끝난 뒤 '명예시민증을 준다' '히딩크 경기장으로 이름을 바꾼다'는 논의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 인근 도로를 '월드컵 4강로'로 이름 짓고, 여기에 '히딩크 기념표지석'을 세우는 것으로 축하작업을 마무리했다. 광주시민 가운데 새 도로명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광주에서 '월드컵 4강 도시'라는 이미지를 찾을 수 있는 것이란 한국선수단이 묵은 기념으로 이름을 바꾼 '히딩크관광호텔' 하나뿐이다. 기념행사도 해마다 한다지만 가수들의 공연,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등이 승부차기나 하는 이벤트가 있을 뿐이다.

지방자치가 지역의 일을 지역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역활성화는 지역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지역사회가 활력이 넘치고 경제가 성장하도록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시장은 그것도 부족해 직접 세계를 돌며 외자를 유치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그 안방에서는 전 세계에 유일한 자원인 '아시아의 자존심'을 내동댕이쳐 두고 있는 것이다.

광주만 그렇겠는가. 전국의 많은 자치단체들도 소중한 '감동'자원을 방치하고 있다. 내년이면 또 전 세계가 월드컵 열풍에 빠져들게 된다.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환희로 넘쳤던 3년 전의 '월드컵 자원'을 찾아내 함께 가꾸어 보자.

김 성 지역활성화연구소장

*본란은 16개 시.도의 74명 오피니언 리더가 참여, 올해 6월 결성된 중앙일보의 '전국열린광장' 제3기 위원들의 기고로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