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감 없는 드라머 인기 얻기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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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다섯 달을 끌어온 KBS제2TV의 『꽃바람』이 당초의 기대에 빗나가 실망만을 주다가 드디어 초읽기에 물렸다.
매일연속극은 주된 테마가 큰 강물처럼 드라머의 중심을 이루고 여러개의 부주제를 깔아 공감폭을 넓히는 게 정석인데 『꽃바람』은 테마설정이 단순한데다 허약하기까지 했던 게 흠이었다.
진실된 애정은 이혼녀라는 전력 따위의 세속적인 조건이 문제될 리 없다는 것인지, 모성애는 부부애보다 강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인지가 뚜렷하지 않았다.
게다가 명자 내외나 윤 기사네를 통하여 서민생활의 지혜와 모럴을 그려낼 수도 있을 법했건만 억지웃음을 짜내는 장식감으로 혹사시킨 구성이 시청자에게 염증만 보태고 만 것 같다.
우유대리점을 하던 청년이 동화속의 얘기이기 십상인 재벌의 도움으로 하루아침에 큰 회사의 사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나 상처가 있다지만,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여의사가 별로 내놓을 것도 없는 총각에게 혼이 팔려 애태우는 상황설정도, 연속극은 실생활의 실황중계다와야 한다는 현실묘사의 감각에 비춰볼 때 현실성이 적어 시청자의 감정에 접합되지 않는다.
또 TV는 본질적으로 통신매체여서 드라머 같은 오락물을 통해서도 적절한 계도력을 보여야 한다는 정신을 외면한 잘못도 크다.
이를테면 빈번하게 약국이 화면에 나오지만 약 파는 장면은 한 커트도 없다. 매약행위를 통해 약을 남용했을 때의 여러 폐단을 계몽하는 작업을 끼웠더라면 시청흥미도 돋웠을 것이고 극의 구성폭도 넓혀졌을 것이다.
또 하나 소재력의 빈곤은 남편을 그대니 신랑이니 하는 어설픈 용어와 촉새여사, 딱다구리여사, 정신 사나워, 따위의 비속스런 표현에 인기를 얻으려 한 탓에 극의 품격을 떨어뜨렸고 사투리의 과용은 방송의 언어순화기능에 역행한 꼴이 됐다.
결국 깊이도 없고 내용도 없는 얘기에 단조로운 테마만으로 채워왔으니 엿가락 늘리듯 질질 끌기만 했다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MBC-TV의 주말연속극 『독백』도 이제 30회를 넘어 역시 끝내기바둑처럼 된 느낌이다.
대재벌의 외동딸이면서 미국물을 먹은 젊은 미망인이 뚝심과 의지력이 센 사내로움에 반하여 결혼까지 했으나 아버지대 때의 원한관계로 부부간의 갈등이 깊어가고 거기에 재벌승계를 둘러싼 암투가 드라머의 흥미구실에 큰 몫을 한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의 성격이 분명하여 시청자의 단순감정을 돋운다거나 표정중심의 화면구도는 배역들의 감정을 쉽게 전달하고 짧고 쉬운 대사가 일상적인 대화형식이어서 부담없이 드라머를 소화시킨다.
그러나 문학청년이 이렇다할 경영수업도 없이 일약 대재벌의 경영자로서 능란한 솜씨를 보인다거나, 어쩌다 장가 한번 잘 가 대재벌의 후계자가 되는 꿈같은 얘기는 애증심리의 굴곡묘사에 집착한 꾸밈법의 탓이다.
소득이 줄어들면 레저비나 문화비 같은 오락비용이 줄고 주로 TV에 오락거리를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생활이 어려운 서민층의 경우 이 탄력성은 더욱 큰 것인데 드라머란 본디 시청자와의 동질성을 전제로 할 때 성공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재벌집안의 얘기나 컬러화면에 어울리는 현란한 색조는 이런 서민시청자가 대리체험을 통하여 공감하기에는 동떨어진 이질상황의 것이니 서민층을 포함한 폭넓은 인기를 얻을 수 없다는 게 이 드라머의 약점인성 싶다.
신견호<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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