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연구도용은 수치스러운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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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학자로서 참으로 통탄할 일이 한가지 있어.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뜻에서 이 글을 쓴다.
최근 간행된『국어국문학』(국어국문학회 발행)87호에 실린 J모 교수(Y대·국문학)의 논문 「최재서 연구」(I)는 본인이 전에 발표한 논문 「최재서 연구」(창작과 비평 두간, 김흥규 평론집『문학과 역사적 인간』1980에 수록)의 해당부분을 거의 전적으로 표절한 것이다.
즉, 전교수의 이 논문은 인쇄된 지면으로 8페이지 분량인데 그중 6페이지 정도가 본인 논문의 해당부분에서 인용문과 일부 본문을 생략하고 거의 완전하게 옮겨 쓴 것이다. 이밖에 나머지 1페이지반 정도의 부분도 내용상으로는 본인의 논문에서 논한 바와 일치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없음은 물론, 어쩌다 사소한 부주의로 있을법한 주기의 실수에도 해당하지 않는 완전한 학문적 절도 행위임이 명백하다. 새삼스러이 말할 것도 없이 학자는 스스로의 창의적 모색과 피땀어린 노력에 의해 새로운 연구성과를 세상에 알리는 책무를 가지고 있으며, 논문은 바로 그 결실의 보고서이다. 따라서 학술논문에서는 남의 견해를 약간 참고한 사실을 명백히 각주로 밝히지 않는 일만 있어도 학자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로 간주된다.
하물며 자기 이름으로 내놓는 논문을 대부분 남의 논문에서 그대로(문장까지도 완전히 그대로)표절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는 참으로 통탄할 일이며 이런 일이 일어나는 학문풍토에서 학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본인은 수치스러운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해서 덮어두기만 한다면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끊이지 않고 자행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떠한 표절행위도 마땅히 세상에 공표 되어 냉엄한 비판을 받는 한편 떳떳한 학문적 노력의 결실이 존중되는 학계풍토가 확립되기를 바라마지않는다. <김오규(고대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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