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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와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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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잘됐으면 좋겠지만, 주식이든 땅이든 투기는 역사적으로 잘 잡힌 적이 없다. '금융투기의 역사'를 쓴 에드워드 챈슬러는 투기의 종말을 카니발에 비유했다. 광란의 잔치가 모두 끝나야 평상으로 돌아오는 카니발처럼 투기의 광란도 인위적으로 멈추기는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근세 부동산 투기의 원조는 미국인데, 대통령에서 하인까지 18세기 미국은 백 년 내내 땅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물론 벤저민 프랭클린도 땅 사재기에 나섰고, 토머스 제퍼슨과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땅장사로 돈을 모았다.

당시 영국의 여행가 윌리엄 프리스트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은 땅투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투기 광풍은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맨해튼을 마천루로 만든 뒤에야 겨우 진정됐다.

투기를 정치적으로 공격하고 나선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대공황의 희생양이 필요했던 루스벨트는 1933년 취임연설에서 주식 투기꾼을 '돈놀이꾼'으로 몰아세웠다. 46년 트루먼 대통령은 투기꾼을 '인간의 불행을 팔아먹는 장사꾼'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투기와 싸운 정치인들의 승률은 별로였다.

투기꾼들의 달러화 공격을 견디다 못해 71년 달러의 금 태환(兌換) 중지를 선언한 닉슨 대통령은 "투기꾼들은 위기를 먹고살 뿐 아니라 위기를 조장한다"고 꾸짖는 것으로 분노를 삭여야 했다. 프랑스 재무장관을 지낸 미셸 사팽이 92년 파운드화를 공격해 떼돈을 번 투기꾼들에게 한 조치라곤 "혁명 때 같으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을 존재들"이란 극언이 고작이었다.

투기와 싸웠던 정치인들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갔지만, 투기꾼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죽 투기의 뿌리가 깊으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은 투기꾼을 자유시장경제의 필요악으로 규정했을까. 하지만 노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는 필요악으로도 용납이 안 된다"고 했다. 30년 이어온 강남불패를 무너뜨리고, 역사상 최초로 투기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보고 싶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예외없는 법칙도 없다지 않은가.

이정재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