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웅의 오! 마이 미디어] 인터넷 서평 넘쳐나지만, 진짜 책 읽기 대체할 순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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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디지털 시대라는데 실속이 없다. 앱 스토어의 그렇게 많은 앱 중에 실제로 내려 쓰는 앱은 별로 없다. 교류 매체에서 ‘친구’가 된 지인과 언제 한번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 인터넷에 읽을 게 천지라는데 정작 뭐 하나 제대로 읽은 게 없다.

 나는 책이 귀하던 1980년대에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구해 복사해 보던 시절이었다. 구할 수 없는 책이 많아 괴롭기도 했지만,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책과 논문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우울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창’과 ‘뉴스피드’를 끼고 사는 요즘 확실히 예전의 우울함은 없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정신적으로 두리번거리는 내 자신이 가련하다. 뭔가 많이 읽기는 하는데 부실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이가 많으리라. 인터넷에서 정보는 접하지만 지식을 정련하지는 못한다. 뭔가 많이 알게 된 것 같지만 그 ‘알게 된 것’이라는 게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견고한 독서에 기초한 앎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책장을 넘기다 고민하고 다시 몰입해 읽기 시작할 때 느끼는 그 밀도 있는 경험이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변죽만 울리는 인터넷 정보에 시간을 뺏긴다.

 혹시 인터넷이란 검색과 열람의 도구를 제공할 뿐 ‘읽기’라는 본원적 경험의 장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책이라 불리는 오래된 매체를 위한 ‘인터넷 플랫폼’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 아닐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터넷 서점 외에도 독서와 관련된 사이트가 있다. 첫째, 서평 전문지가 있다. 나는 직업이 교수인지라 이것저것 읽은 체하면 주변 사람들이 짐짓 놀란다. 어찌 그리 많은 책을 읽었느냐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책이라면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말하는 비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또한 실제로 읽은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상태인 경우가 있다. 서평 전문지를 읽기 때문이다. 나는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와 ‘뉴욕타임스 북리뷰’를 구독한다.

 둘째, 출판사가 제공하는 정보들이 있다. 이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은 정보라는 게 문제다. 의례적으로 따라붙는 주례사급 추천사와 일간지 지면에 실리는 성의 없는 신간 정보도 마찬가지다.

 셋째, 독자의 서평이 있다.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서점의 독자 서평란에 실린 글들이다. 이 중에는 진정하고 진솔해 감동을 주는 글이 있다. 그러나 글쓴이의 편견과 무지를 증명하는 문장을 보며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과 같이 독자 서평을 서비스에 통합하는 데 성공한 경우가 놀랍다. 그렇지만 찬찬히 서평들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이럴 시간이면 차라리 그 책을 읽는 게 낫겠다고.

 뭐든지 인터넷에서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친교는 물론 성교도 가능하다니 낯을 가리는 나로서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독서 경험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책이란 무릇 실제로 읽어보지 않고는 그 품질을 알 수 없는 전형적인 경험재다. 읽고 나서도 모르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읽을지 말지 고민하는 시간이 읽는 시간보다 심각할 수 있으며, 일단 읽기로 다짐했건만 실제로 읽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특이한 매체다. 실은 대부분의 책이 이런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막상 읽을 때 시간이 멈추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이런 신비한 독서의 경험을 매개하는 인터넷 플랫폼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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