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사실 못잖게 해명에 힘 기울여|정광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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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총장이 직접 발표한 장 여인 사건의 수사결과를 보고 이 사건에 관한 그간 검찰의 노고와 고뇌를 동시에 알아차릴 것 같았다. 발표문 자체를 보더라도 검찰이 이 사건에 관한 한 그 본래의 소관이 아닌 정부의 모든 입장을 떠맡고 있음을 말하여 주고 있다.
검찰이 이 사건에 수사기술상의 문제 이상의 어려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검찰기능의 정치권력과의 관계는 별론으로 한다 하더라도 사건이 사건인 만큼 철저한 수사가 잘못하다가는 경제적 파국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초반 수사를 주저케 하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대부분 소상히 조사하고 고위층의 인척되는 사람까지 구속한 것은 검찰이 그 본래의 직분에 충실하였다는 점 외에도 국민적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성의있는 자세로 일단 평가받을 만 하다.
그러나 국민된 입장에서 보면 검찰의 이번 수사발표를 보고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다. 발표 내용 자체가 정부 내지 검찰의 입장해명에 치우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사건의 성격 또는 앞에서 말한 이 사건에 있어서의 검찰의 위치로 보아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다음 몇 가지 점에 있어서는 수사가 미진한 감을 준다.
아직 수사가 종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기대하여 보는 뜻에서 의문점을 말하여 본다.
첫째, 사채업자 중에서 은행·단자회사에 예금을 조성한 사람에 대한 수사는 이사건의 핵심중의 하나라고 본다. 이 사람들은 어음을 할인하여준 사람과 같은 차원의 사채업자가 아니다. 장 여인의 하수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어음을 할인하여 준 사람은 이사건의 피해자이고 장 여인의 하수인이라 하더라도 할인 사채업자에 대하여는 검찰수사발표로써 납득이 간다. 그러나 예금조성자는 그렇게 가볍게 보아 넘길 수가 없다.
이들이 조성한 예금규모가 무려 1천7백억원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보통의 양건대출과는 그 규모가 다르고 따라서 그 목적도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통화량의 약4%에 해당하는 1천 7백억원을 움직일 수 있는 사채업자라면 대단한 실력자다. 이런 사람이 장 여인을 위하여 거액을 은행에 예치하였다면 이는 이 사건의 비호자 또는 공범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규광 씨가 장 여인으로부터 받은 돈과 동인의 어음사기사건 관련 가능성이다. 이규광 씨가 받은 돈 중 1억원은 중동합작은행 설립관계로 받은 명목이 뚜렷하니 별론으로 하고 축의금 등 명목으로 1억원을 받고 3억 2천만원 짜리 집을 받기로 되어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처제와 형부간이니 특별한 명목 없이도 돈이 오갈수도 있고 도와줄 수 도 있기는 하다. 오고간 돈이 몇십만원 아닌 몇백만원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 수준에 있는 사람이면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 하고 믿겠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수억원이다. 도대체 이규광 씨는 장 여인의 재력이 어느 정도로 알고 그 돈과 집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았단 말인가? 무슨 돈 인줄 알고 받았단 말인가? 검찰수사 발표문을 보면『이규광이 간접적 또는 묵시적으로 장영자 등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추리됩니다』고 되어있어 위 발표문만으로는 간접적·묵시적으로 가담하였다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런 인상을 주었다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지만 검찰은 끝내 추리만 하고 있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셋째, 돈의 행방이다. 보통사람이라면 1억원의 소비명세를 기재하려면 가계부 한권 정도로는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장 여인의 그 동안의 사교생활비가 자그마치 49억원으로 발표 됐다. 이 엄청난 돈은 웬만한 사람도 쓰려야 쓸수 없는 현기증이 나는 거액이다.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졌다는 명세가 없는 한 누구든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수백억원 또는 수십억원의 소비처를 단 한 항목으로 처리됐으나 수사결과 돈의 소비처가 명백히 밝혀졌다니 우리는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지만 좀더 세부적인 명세와 그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지 앉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돈의 행방은 조금만 틀려도 그 자체가 다른 곳에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거액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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