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한국정부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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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9일 저녁 북한이 조선중앙TV를 통해 6자회담 복귀를 발표함으로써 1년 1개월 만에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되게 되었다. 과거 3차례의 6자회담과는 달리 이번 6자회담의 개최 과정에서는 한국정부가 처음으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였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4차 6자회담의 개최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3일 LA에서 대북 무력사용, 봉쇄 등의 미국내 강경론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올해 2월 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한미공조를 통해 미국의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 채택을 막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6월 10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을 자극하지 말 것을 요청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정부가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자주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정부의 이같은 노력에 대해 북한은 중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6월 17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당 총비서간의 면담을 통해 7월내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밝히는 것으로 ‘보답’하였다. 지난달 20일 폴라 도브리안스키 미 국무부 차관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에 포함시켜 언급하였을 때 한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례적으로 미국측에 말조심을 당부하는 경고를 보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비공식 통로를 통해 우리측에 사의를 표명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동영 장관이 방북 후 미국을 방문하여 김정일 총비서의 대미 화해 의사를 미 행정부 고위층에 직접 전달하고, 한국정부의 대북 ‘중대 제안’에 대해 미국측의 동의를 이끌어냄으로써 한국정부는 과거에는 말에 그쳤던 ‘적극적 역할’ 수행 의지를 현재에는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정부는 더 나아가 기존의 비효율적이고 저속도의 회담 형식의 변경 작업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측 6자회담 차석대표인 조태용 북핵외교기획단장은 지난 번 CSIS 세미나에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더 자주 열되, 반드시 전체회의 형식이 아니라 소그룹별 회의를 가질 필요가 있으며, 대표단장끼리는 (결론이 날 때까지 회의를 계속하는) 교황선거 방식으로 진지하고 집중적인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장관급 ‘조정위원회’ 산하에 핵, 기술, 경제, 정치 등 국장급이 단장인 3개 소위가 거의 매주 회의를 열어 논의 내용을 조정위원회로 올려 결정하는 ‘독일-영국-프랑스-이란간 핵회담 방식’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국정부가 기존의 6자회담 방식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리고 비록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6자회담의 재개 및 북미간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높이 평가할만한 부분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 북미간의 입장 차이가 워낙 크고, 중국의 역할에 일정한 한계가 있는 만큼 한국이 계속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6자회담 재개 합의 도출에 만족하지 말고, 향후 정책 추진시 다음 사항들을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첫째, 6자회담이 더 이상 ‘길고 지루한 협상’이 되지 않도록 협상 타결 시한을 정해놓고 회담 참가국들의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늦어도 내년 7월까지는 협상을 완전히 타결짓는다는 목표 하에 적어도 향후 1년 동안은 회담 참가국이 서로를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고, 매 회담에서 주요 의제에 대해 일정한 합의를 도출해낼 때까지 협상을 지속하는 새로운 회담문화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6월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 총비서에 대해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호칭한 것이나, 북한이 최근 대미 비난 발언을 눈에 띠게 자제하고 있는 것 모두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처럼 대화 상대방에 대한 자극을 자제하는 태도는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의 조기 타결을 위해서는 교황 선거 방식 도입 이외에도 회담을 준상설화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 한 나라에 의한 대북 안전보장보다 다자에 의한 안전보장이 더욱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다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시키는 동시에, 미국으로 하여금 북미 대화에 전향적으로 나서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9일 조선중앙TV를 통해 7월말 6자회담 복귀 입장을 밝힌 후, 다음 날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지난 6월 30일-7월 1일의 뉴욕 북미 접촉과 9일 베이징에서의 6자회담 북미 단장 접촉 결과 6자회담에 나가기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북한은 북핵 포기의 반대급부로 미국의 북한체제 인정을 간절히 바라고 있으므로, 한국정부는 제4차 6자회담의 개최 후에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차관 그리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및 이들의 김 총비서의 면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한국정부는 북한과의 상설협의채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근 홍석현 주미대사가 뉴욕으로 가 박길연 유엔 주재 대사를 만나 회담 복귀를 촉구한 일이 앞으로는 더 이상 ‘이례적인’ 일로 지적되지 않도록, 북핵 관련 북한과의 직접 접촉 기회를 증대시키고 다변화해야 할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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