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학점이 약이 되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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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선생님에게>
나의 스승 이희승 박사는 금년에 86세이시다. 청각이 조금 안 좋으시나 아직도 정정하시다. 내가 선생님을 처옴 뵌 것은 서울대 문리대 언어학과에 입학하고 나서다.
입학 후 1주일만에 6·25가 일어나 학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선생님의 국어학 개론을 수강 신청하려는데 한 상급생이『이 선생님은 점수가 매워 거의 낙제나 면하니까 듣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수강신청을 하고 강의를 들었는데 학기말 시험결과를 보니까 역시 선배의 얘기대로였다. 그러나 나는 계속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이 세상에서 한번도 스승을 모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누구도 스승이 단지 학식만이 높아서 존경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학식은 조금 못 하더라도 인격이 높으신 분을 제자들은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 간직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희승 선생님은 높은 학식과 깊은 덕을 함께 지니신 분이시다. 선생님의 고견한 인품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선비이시다. 학문에 있어서 철저하시고 언행이 곧으시고 성품 또한 지극히 인자하시다. 공으로나 사로나 어느 때 뵈어도 어느 곳 한군데 흐트러진 것을 뵌 적이 없다.
선생님이 젊었던 시절에는 구식 부인과 신학문을 한 청년들간에 알력이 상식처럼 뛰어 있었다. 스캔들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이런 종류의 풍문 한번 있어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정해주신 부인과 결혼하신 후 해로하셨다. 내가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렇게 자신에 관해 엄격하시고 사생활이 깨끗한 때문이기도 하다.
해방 후 그토록 세상이 여러번 변해도 선생님은 한번도 권력에 추파를 던지시지 않으셨고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으시며 자신을 지켜오셨다.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에 선생님은. 4·19 교수 데모 대열에 앞장서시어 독재를 나무라고 학생들의 무고한 죽음에 항의하셨다.
언젠가 나는 선생님이『옛날에는 제자들은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말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또 선생님은 당신의 선생님을 존경한 것이 아니라 숭배하셨다고 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태도에 비교하면 내가 선생님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부족하다는 생각뿐이다.
학생시절 나는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찾아뵌 적은 없었다. 졸업 후 작가가 되어서도 각기 다른 방면에서 활동하느라 거의 접촉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스승이라면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분이 이 선생님이시다. 사실상 스승을 자신의 가슴에 담아두고 평생 존경과 사랑을 보내는 제자란 늘 그분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제자만은 아니다. 제자의 입장에서 많은 스승들이 이러한 제자들도 세상에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사고 부탁드리고 싶다.
사실상 곰곰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특별히 나만을 위해서 무언가 해주신 것은 없다. 그러나 선생님의 학문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맑은 인격의 향기는 늘 나로 하여금 존경과 사랑을 보내게 한다. 나는 오늘도 선생님이 편집하신 국어 대사전을 책상 위에 놓고 글을 쓰고 있다. 한말숙 <51·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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