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사로 외길 4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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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할머니 선생님, 감사합니다』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받쳐들고 서로 다퉈 달려오는 철부지들의 해맑은 동심으로 노 교사가 맞는「스승의 날」은 흐뭇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박옥진 선생님(65·서울 금양국민교 3학년6반 담임). 45년을 교단에 바치고 조용히 정년(오는8월)의 날을 기다리는 그는 돋보기를 낀 할머니지만 아직도 마음만은 동심이다.
『어린이가 선생님에게서 회초리를 맞았다면「철없는 애 버릇 고치려고 수고하셨다」면서 고마워하던 학부모들이 요즘은 오히려 그런 교사를 욕하고 심하게는 폭력으로 위협하는 상황이 슬프다』는 박 할머니는 그래서「스승의 날」에 만감이 오간다고 했다.
박 교사가 처음 교단에 선 것은 일제 치하인 37년4월. 꼭 45년 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교사는 인기 있고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 직업이었다.
경성여자 공립 보통학교(경기여고 전신)와 경성여자 사범학교를 마친 그는 청주 수성 공립 소학교 훈도로 첫 교편을 잡았다.
『천진난만한 동심속에서 지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교감·교장 등 행정직을 피해 다녔습니다』박 교사는『아직도 마음 같아서는 어린이』라면서 천진스럽게 웃어 보였다.
지난 45년동안 청주를 비롯, 개성·서울 등 9개 학교를 거치면서 직접 길러낸 제자만도 5천여명. 이 가운데는 이대 음대 성악과 교수인 정복주씨(34·여·삼광국교 제자)등 많은 인사들이.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 교사는 성공한 제자를 보면 가슴뿌듯 하단다.
『45년전 초 임금이 월42원이었습니다. 쌀값으로 따지면 지금의 80만원에 해당합니다』요즘 교대 졸업자의 초 임금에 해당하는 15만원에 비하면 염청난 액수다. 경제적 대우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대우도 대단했다. 박 교사는「교권 확립이나「스승의 날」이 없어도 그때는 매일 매일이 스승의 날이었고 교권은 왕권에 비유되는 군사부일체(군사부일체)가 생활속에 스며 있었다고 했다.
지금 박 교사가 받는 봉급은 45만원. 실질 봉급은 그 옛날 초임봉의 절반정도에 불과하다. 사회적인 대우도 그랬지만 경제적으로도 부러울 것이 없었던 처녀교사 시절을 잊지 못하는 박 교사는 이번 새로 생긴「스승의 날」이 교사를 존중할 줄 아는 사회 풍토 조성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추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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