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 Report] 외국 자본 밀물 … 약인가 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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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최근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외국 자본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외국 자본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였는가, 아니면 단기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경제에 해가 되었는가 하는 것에 모여 있다.

긍정적으로 볼 경우, 외국 자본은 자본 공급의 증가로 자본 비용을 축소해 투자를 증가시키고, 이에 따라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 또 그 과정에서 자본시장 발전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도 기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제기되고 있듯 외국 자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따르면, 외국 자본이 단기 이익을 추구함에 따라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본다. 국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기업의 장기 성장 동인을 저해하고,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외국 자본이 필요한 한국 등 신흥시장국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외국 자본을 국내에 유입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평가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작금의 외국 자본에 대한 논란은 외국 자본의 유입 형태가 부채 중심에서 자산 중심(equity-based)으로 바뀐 데서 연유한다. 과거에는 외국 자본이 주로 채권 형태로 유입돼 외국 자본이 채권자로서의 권리만 행사했으나 최근에는 포트폴리오(증권)투자자로 국내 기업의 주식을 인수함으로써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외국 자본 중에 소유와 경영을 동시에 추구하는 직접투자가 증가하면서 주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국가 전체의 위험 관리 차원에서 이러한 추세는 바람직하다고 평가된다. 부채 중심의 외국 자본의 경우 시스템 위험을 모두 국내 채무자가 지는 반면, 자산 중심의 외국 자본의 경우는 그 위험부담을 자산 보유자들이 나눔에 따라 급격한 자본 유출에 대한 위험이 분산.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신흥시장국의 입장에서는 소유와 경영에 동시에 참여하는 직접투자 형태의 외국 자본 유입을 선호하는 유인이 있다. 직접투자 형태의 외국 자본은 자본뿐 아니라 선진 기술 및 경영 수업을 동시에 수반하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직접투자는 다른 형태의 외국 자본보다는 유출입 변동성이 낮다는 이점도 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외국 자본의 부정적인 시각은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 행위의 폐해에 모여 있다. 단기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일부 투자 펀드가 국내 기업 주식을 매입하고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약탈적 주주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개별 사안을 가지고 전체 외국 자본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기 힘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최근 분석은 외국 자본이 비교적 국내 경제, 특히 주식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외국 자본의 국내 주식시장 유입이 국내 주식시장의 유동성을 높이고 주가 상승에 기여해 온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국내 기업이 배당을 늘림에 따라 주식 가치가 높아지고, 그 결과 주식 프리미엄이 존재하지 않았던 국내 주식시장에 주식 프리미엄이 형성되는 등 외국 자본 유입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것이 분석 결과다.

개별 기업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도, 외국인 주식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주장들이 대부분 근거가 미약하거나 오해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국부유출론부터가 그렇다. 외국 자본이 해당 기업의 배당을 높여 단기에 자본 이익을 챙겨 해외로 뽑아가 국부유출을 부추긴다는 주장의 경우 실증적 근거가 없다는 게 분석 결과다.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이 배당 성향을 높인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국내 기업의 배당 성향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내국인과 외국인 투자가 모두에게 과거보다는 높은 배당이 지급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 외국인의 주식 보유 비중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한 또 다른 논란 중 하나가 외국인의 주식 보유가 늘어나면서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기업의 설비투자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 역시 그 근거가 미약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외국인 지분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설비투자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국인 주식 투자가 장기 성장성을 대표하는 설비투자가 높은 기업에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외국인 주식 투자가 단기적인 수익 증대뿐만 아니라 장기성장성에 의해 이뤄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외국 자본의 참여가 당해 기업의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했는가 하는 데 대한 실증 분석도 외국 자본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지수를 설정해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과 비교해 보면, 외국인의 주식 보유 비중이 높을수록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하건대, 일부 투자 펀드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 투자가는 장기 투자가이며,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 배당을 높이지 않았으며, 외국 자본 유입 증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실증분석 결과다. 한마디로 외국 자본이 한국 경제와 기업경영에 긍정적인 기여를 해온 것이다.

일부 외국 투자펀드에 의한 폐해는 외국 자본이 가지는 속성이라기보다는 국내 제도의 비효율성이 야기한 시스템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적대적 M&A의 문제나 허위 공시의 문제는 국내 펀드의 투자 운용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자본 유입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에는 국내 기업 지배구조가 이해당사자(stakeholder) 중심에서 주주(shareholder) 중심으로 바뀐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외국 자본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주주 이익 중심의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정책을 통해 우리가 보호하려는 가치가 무엇인가, 특히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간에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국내 기업가.종업원.소비자 등 이해당사자의 이익을 보호할 것인지에 관해 분명한 가치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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