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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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섬섬옥수라는 말이 있다.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이다. 이런 손을 잡는 것은 사랑의 징표다.
때로는 구원을 의미하는 손도 있다. 어머니의 손은 비록 섬섬옥수는 못 되어도 평화이고 안 락이며 신뢰다. 고아원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는 것보다 손을 잡아 주는 것을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 「라퐁텐」의 우화 속에도 손이 등장한다.
어느 날 아기 양 혼자 있는 집에 이리가 나타나 어미 양 목소리를 흉내내며 문을 열라고 있다. 이 때 아기양은『어디 하얀 손을 보여줘 봐!』라고 했다. 이 경우의「하얀 손」은 바로 믿음과 평화의 손이다.
중국 전설에『마 고의 손』이라는 얘기가 있다. 마고는 전설 속의 선녀. 그는 평소 손톱을 새(조)의 발톱 모양으로 기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 때는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표독하고 간교해 보이는 손이지만 때로는 고맙고 착한 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람에게 손이 없었다면 오늘의 문명이 가능했을까. 인간이「호모·파베르」(공작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손 때문이며 결국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런 손을 악덕의 심벌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작가 「A·비어스」는 그의 유명한『악마의 사전』에서 손은『인간의 팔 끝에 붙어 있어, 흔히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를 넘나드는 별난 도구』라고 했다.
요즘 우리나라 사채시장을 뒤집어 놓은 장녀인의 큰손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옛날부터 인간의 손은 주술을 연출하는 영적인 존재로도 보았다. 지금도 기독교에선 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느님의 기적이 내리기를 기도하는 의식이 있다.
악수도 역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입맞춤과 함께 상대의 손을 잡는 것은 존경과 친애와 우정의 표시였다. 이런 습관이 페르시아, 이집트를 통해 유럽, 세계로 번졌다.
동양에서만은 손보다 머리를 더 내세운다. 승려들도 머리를 숙이고 합장을 한다. 합장은 겸손과 경 건의 의미를 갖는다. 오만스러움은 얼굴 아닌 손에 나타난다는 뜻일까.
바로 법정에 서는 형사 피고나 죄수들이 구속을 받는 부분은 손이다. 손에 쇠고랑을 찬다. 하긴 옛날엔 손도 손이지만 죄수들의 머리에 용수를 뒤집어 씌웠었다.
머리와 손이 함께 단죄되는 것이다.
요즘 산업현장의 새 역군으로 등장하고 있는 로보트는 실은 몸체 없는 손만의 괴물이다. 인류발전 사에 손의 구실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금 알 수 있다.
바로 그런 손이 우리 사회에선 너무 커서 화근이 되었다. 그것도 털이 숭숭 난 시커먼 손 아닌 섬섬옥수가 그랬다.
마음의 단속도 중요하지만 손의 단속이 더 중요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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