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꿔달라"에"200억 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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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전 공영토건 사장 변강우씨>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물의를 빚은데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리고 회사를 살리는 일과 부채 청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은 다음날인 12일 공영토건의 변강우 전 사장(47)은 상오7시30분쯤 서울 목동 78의3 회사에 들러 상오8시30분까지 각 사무실을 돌아보며 출근하는 직원들을 격려한 뒤 회사를 나갔다.
사건이 터지면서부터 식사를 제대로 못해 몹시 수척해진 변씨는 착잡한 표정으로『무엇보다도 장 여인으로부터 공영이 발행한 초과어음 1천2백99억원에 대한 행방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쿠웨이트 건설공사가 시원치 않아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을 때였습니다. 당시 아는 사람으로부터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정부 실력층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서 이철희씨를 소개받았던게 비극의 싹이었습니다』변 사장은 이씨를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정부 실력 층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처음 만났을 때는 얼마든지 쓰라면서 백억원을 제사하더군요. 우리는 50억원만 쓰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반강제적으로1백억원을 썼습니다』
변 사장은 금리가 당시 은행 금리보다 싼 20%선으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고 했다.
이후 이씨 부부는 사업확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고 가끔 은행융자도 알선해 주었다고 했다.
1백억원의 은행 대출이 3∼4시간만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가하면 그때마다 결제 어음이 특정일에 1백억∼2백억원씩 집중되도록 해 은행마감 시간 직후 결제토록 하는 등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는 것.
아울러 이씨 부부는 그때마다 견질 어음의 증액을 요구해 왔다고 했다.
지난해 말부터 낌새가 이상해『어음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자『국가적 주요사업인데 협조하라』고 말했다는 것.
『금년 들어서 S주택·L주택 등 건설업체들도 똑같은 수법으로 걸려들고 있음을 알고 시중의 어음을 회수해 달라고 강력히 촉구했지요』 변씨는 그러나 4월 들어 부도 위협은 가중됐다고 했다.『지난달 28일 상오10시30분부터 12시간동안 이씨 부부와 최후 담판을 했습니다. 이때 배수진을 치고 어음 회수를 요구하자 이씨 부부는 2백억원의 견질 어음을 추가 요구해 결말을 못보고 다음날인 29일 상오 29시 30분 다시 이씨 부부를 만나기로 했지만 그러나 그날 저녁 수사당국에 이씨 부부가 연행됐던 것이지요』라며 사건 전말을 설명했다.
『29일부터 어음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처음에는 25억원 짜리, 다음에는 40억원 짜리 등 모두 90억원을 막고 나니 다시 40억원이 들어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공영이 이씨 부부에게 제공한 어음은 모두 1천4백억원에 달하지만 빌어쓴 사채는 1백96억원에 불과합니다. 이에 대해 공영이 이씨 부부한테서 대 신받은 것은 일신어음 2백억원, 대화어음 7백억원 등 담보조로 9백억원 상당의 어음밖에 없습니다』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변 사장은『이씨 부부가 그 많은 돈을 모두 쓸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흑막이 개제돼 있음을 넌지시 비추기도 했다.
『당국이 철저히 수사만 한다면 70%는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고 60%만 찾아주어도 3년 이내에 부채는 모두 상환할 자신이 있습니다.』
변 사장은 이씨 부부의 사기행각에 대해 예를 들면서 지난해 2월13일 롯데 호텔에서 이씨가 공영토건의 변태수 상무를 만났을 때 이씨가 변 상무에게 『우리가 공영토건에 자금지원을 하고 있는 것을 비밀로 하라』고 일렀으며 『자금지원 사실을 발설하면 자금지원이 끊기는 것은 물론 혼난다』는 식의 연막 전술을 썼었다고 전했다.
또 장씨는 처음부터 표면에 나서지 않고 변 상무가 이씨를 만난지 사흘 뒤인 2월16일에야 얼굴을 비췄고 롯데호텔에서의 4번째 면담에서 『우리 회사 변장무가 장씨에게 2백억원 짜리 약속어음을 건네주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 이 사건에 휘말리게된 최초였습니다』며 강 사장은 한숨 지었다.
변 사장은 2, 3일 안에 모든 진상을 밝히고 국민들에게 사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새로 취임한 우재구 사장은『취임해보니 경영 조직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조직을 정비하고 인사를 개편하여 합심 노력한다면 정상화의 길이 있습니다. 1∼2년만 기다려주면 빚을 갚고 경영을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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