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대로는 노점상 단속 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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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6시 서울 강남대로에서 강남구청이 불법노점 단속을 위해 임시로 고용한 용역 직원들이 노점상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승식 기자]

“야! 밀어내 빨리 저기 치워.” “버텨! 대오 정비해서 버티라고”

 4일 오후 5시45분 강남역 11번 출구쪽 강남대로는 아수라장이 됐다. 강남구청에서 고용한 용역직원 30여 명과 노점상 측 50여 명이 서로 몸싸움을 벌였다. 용역직원들이 노점을 철거하려고 하자 노점상들이 몸으로 버티며 막아섰다. 일부 노점상들은 “야, 어디 한 번 해봐!”라고 소리치며 바닥에 식용유를 뿌리고, 어묵·떡 등을 용역 직원들에게 던졌다. 용역직원들이 노점상들을 끌어내고 좌판을 트럭에 싣자 노점상들이 도로로 달려들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김다혜(23)씨는 “뉴스에서만 보던 장면인데 노점상들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직장인 김민석(31)씨는 “노점상들도 안 됐지만 불법영업인데 구청 이 단속을 안 할 수 없지 않느냐. 오히려 노점상들이 너무 강하게 막아서니 충돌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청과 노점상들이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강남구청 측은 시민 보행권을, 노점상들은 생존권을 내세우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 2일 오전 3시부터는 강남대로 한복판에 컨테이너 박스도 등장했다. 노점상들은 컨테이너 박스에 가스통 등을 가져다 놓고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2009년 강남대로를 정비하며 사라졌던 노점상들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11년이다. 강남대로 뒷편 여명길에서 영업하던 노점 10개가 강남대로로 내려온 후 노점들이 늘어나 지금은 30여개가 영업을 하고 있다. 구청의 지속적인 단속에도 노점상들이 영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강남대로가 국내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아 단속만 피하면 큰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알짜배기 영업지라서다. 지난 2일 오후에도 노점상들과 용역직원들 간에 충돌이 벌어져 도로 일부가 통제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강남구 정한호 안전건설과장은 “강남대로에서 영업하는 노점상들은 대부분 2개 이상의 노점을 운영하는 기업형 노점으로 생계와는 무관하다”며 “여명길에서 노점을 해도 충분한 데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영업이 금지된 이곳까지 내려오는 바람에 각종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측은 이들 노점들의 한달 순수익이 1000만원은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노점상들은 생존권 보장을 위해 강남대로 쪽에 노점 25개의 영업을 허용해달라고 주장한다. 노점의 수익도 평균 200만~300만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최오수 민주노점상전국연합회 대외협력국장은 “일부 노점상들이 임대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영업을 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고 있다”며 “노점상들과 상생하고 있는 다른 자치구와 달리 강남구만 유독 심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 시내 노점상 수는 8826개 정도다. 자치구와 노점상간 대립은 시 전역에서 벌어진다. 서울시 자치구들의 노점상 단속건수는 2012년 4785건, 2013년 4813건, 올해 6월말 2925건이다.

 특히 서초·강남·종로·중구 등 유동인구가 많고 관광객들이 몰려 있는 곳들에서 충돌이 잦다. 중구청도 최근 신당동 주변 불법 노점 단속을 하며 노점상과 갈등을 빚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태조사를 통해 생계형과 비생계형으로 나눠 노점의 허용여부를 정하는 자치구도 생겼다. 노원구는 재산규모가 2인 가구 기준 2억원 이하를 생계형 노점상으로 정해, 1년 단위로 최장 5년까지 노점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하철 7호선 하계역 인근의 노점을 시민 보행에 지장이 없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도 협의하고 있다. 하지만 실태조사를 해도 생계형과 비생계형을 구별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한 자치구 단속 담당자는 “조사에 대비해 미리 재산을 쪼개거나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경우가 많아 실태가 제대로 파악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강남 등 노점상들의 이권이 큰 지역은 특히 더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점 등록제 등을 통해 노점 운영이 가능한 구역을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단국대 조명래(도시지역계획학) 교수는 “노점상을 불법이라고 규정한 후 간헐적으로 철거 단속을 벌이는게 오히려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지자체가 운영 시간·장소, 판매 가능 품목, 운영 자격 등 조건을 정한 후 노점상을 관리하는게 훨씬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글=안효성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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