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 곽씨 집성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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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마산 쪽으로 15km, 달성군 구지면 표지관을 따라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현풍 남부 국민학교가 나온다.
학교 담장을 끼고 우아한 단청의 정한 열 둘이 나란히 서있으니 이곳이 충신·효자·열녀를 한꺼번에 열둘씩이나 낸 도덕마을 율례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나지막한 구릉이 배수를 치고 앞으로 질펀한 논밭이 펼쳐져 한눈에 풍요롭고 조용한 전통 농촌임을 알 수 있다.
『옛말에 일하회 일견위라 하지않았습니까. 사람 살기에는 하회가 첫째요, 율례가 두번째라는 말대로 터를 잘 잡았어요』
곽문의 청백리로 소문난 곽안방의 18세손 동후씨(56)가 추보당으로 안내하며 마을 내력을 들려준다.
곽병수 옹(74)을 마을 문장으로 1백20여 가구 곽씨들이 율례에 몰려있고 타성은 단 7가구뿐. 이웃 현풍·논공·고령·유가까지 합치면 곽씨들만 1천여 가구가 머리를 맞대고 살아 그야말로 현곽 못자리인 셈이다.
6·25때 동네가 몽땅 불에 타 뿔뿔이 흩어졌던 일문들이 다시금 모여 오늘의 곽씨 동족락을 형성하고 있다.
『1백여호 집들이 그루터기하나 안 남고 타버렸어요. 난리가 끝나고 돌아와 보니 유독 안방 할아버지가 거처하시던 이 추보당만 고스란이 남아있었는데 인민군들의 통신부대가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사립문에 초가지붕을 얹었어도 마루에 올라서면 어느 집이나「충효 세업」의 가훈이 붙어있는게 특징.『신식교육 받은 사람들은 옛 어른들의 행적에 지금도 꼭 그래야 되는가 하고 의아심을 갖기도 하지요. 하기야 요즘 젊은이들한테 부모 따라 남편 따라 순절하라면 정신나간 소리한다고 비웃지 않겠소.』
문장 곽 노인은 그래도 시기하지 않고 이웃간 다투지 않고 어른 공경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꼭 같다고 말란다.
죽재공(곽정) 울산공(곽양)의 후손 중에 곽상훈(전 국회의장) 곽종원(전 건국대 총장)씨 등 유명인사들이 나왔지만 이곳 마을출신 중엔 언뜻 내놓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곽 노인은 대대로 농사일에만 전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금도 농업이외엔 아무 산업도 없이 그것도 특작물이 없는 논농사로 가구 당 2백여만원의 넉넉지 못한 마을이다.
『그러니 모두들 가까운 대구·마산으로 빠져나가요. 도덕 촌이고 종가촌이고 보니 재실이 7군데나 있어요. 재실지기 하려는 사람이 없어요』
동후씨는 일가중 일자리 없는 사람을 다른 곳에서 불러다 땅 3천평을 붙여주고 겨우 재실지기를 두고있다고 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곽씨들뿐이고 보니 이곳 국민학교에선 출석을 부를 때에 이름만 부르는 것이 통례.
곽기진 교사는 한 반에 있는 어린이들 중 촌수로 따지면 아저씨·할아버지뻘이 수두룩하다며 가정 교육들이 염해 예절바르고 온순한게 학생들의 특징이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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