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4분기 순익 백24억…작년의 5배|투자가는 울어도 증권사는 초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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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투자자는 울어도 증권회사들은 여간 즐겁질 않다. 불황에 아랑곳없는 돈 장사. 그 중에서도 최근 들어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곳이 증권회사다.
27개 증권회사들이 금년 1·4분기(1∼3윌) 3개월 동안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1백24억 원. 지난해 같은 기간의 24억 원에 비해 무려 5배가 넘는다.
무엇으로 이처럼 호황을 누리는 것인가. 우선 러시를 이루고 있는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증권회사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회사채 발행창구 노릇을 해주는 대가로 2.4%의 수수료를 떼어 간다.
1백억 원 짜리 빚 주선 한번 해주면 2억4천만원을 고스란히 벌어들이는 것이다.
이 같은 황금 알을 낳아 주는 거위를 놓고 증권회사들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다. 발행된 회사채가 팔리지 않을 때는 인수한 증권회사가 죽을 지경이지만 요즈음은 없어서 못 판다.
지난 연말 이후 6차례나 치른 금리인하 덕분에 회사채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졌고 이 바람에 회사채는 발행되기가 무섭게 날개돋친 듯이 팔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번 돈만 따져도 금년 3개월 동안 67억 원. 4월말 현재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액이 6천억 원이었고 연말까지는 1조원 가량을 더 발행해야 할 처지이고 보면 증권회사 돈버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일반기업들이 빚을 질수록 돈은 자연히 벌리도록 되어 있는 셈이다.
시중은행들도 지준 부족에 허덕이는 나머지 증권회사를 찾아다니며 통사정을 하는 신세가 됐다. 은행이 가지고 있는 채권을 환매조건부로 사주는 형식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증권회사가 은행에 단기금융을 해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 며칠동안이라도 은행소유 채권을 맡아 두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증권회사의 주 수입원은 주식거래를 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수료 수입이다.
3개월 동안의 수탁 수수료가 1백13억 원에 달했다.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증권회사로서는 상관할 바 아니다. 상투이든 바닥이든 거래만 많이 이루어지면 증권회사 수수료는 그만큼 불어나는 것이다.
77∼78년 증시가 한창 호황을 누릴 때에도 하루평균 5백만∼6백만 주 수준에 불과하던 거래량이 최근 들어 1천만주 선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그만큼 증시규모가 커진 탓이다.
거래실적은 곧바로 일선지점장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저울로 통한다. 은행으로 치 면 예금실적이다.
유능하다는 평판을 들으려면 최소한 2∼3명 정도의 단골 큰손들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의 장 여인 경우도 그동안 주 창구 노릇을 해 온 H증권 입장으로서는 거래실적을 올려 준 제1의 대 고객으로 모셔 온 터였다.
한차례 작전이 벌어질 때마다 애꿎은 일반투자자들의 돈을 굵어 갔으나 증권회사의 수수료수입은 잔뜩 올려 주었다.
이게 너무 지나쳐서 때로는 큰손들과 증권회사가 한통속으로 짜고 돈다는 비난도 받게 된다.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거래실적이 부진한 경우 지점장이 제 돈으로 통장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라도 실적을 불려 놓아야 한다. 심지어는 물래 고객들의 통장에까지 손을 대게 된다. 전형적인 증권회사 창구사고의 시작이기도 하다.
수수료뿐만 아니라 증권회사가 채권이나 주식을 직접 사고 팔아서 벌어들이는 수입도 물론 적지 않다.
증권바닥의 전문가가 제 돈으로 투자하는 것이니 오죽 잘 하겠느냐 싶지만 원숭이가 나무에 떨어진다는 격으로 오히려 그쪽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다.
금년 3개월 동안을 보면 벌어들인 증권매매이익은 3백47억 원인데 비해 이걸로 손해를 본 것이 3백51억 원으로 오히려 낙제점의 투자를 한 셈이다. 그게 증권시장이다.
매매차익은 둘째고 자금동원을 위해 밑지고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는 증권회사들의 설명이지만 그보다는 자신들도 주가향방을 정확히 짚지 못하는 것이 근본원인이다.
그러면서도 일반투자자들에게는 언제나 침이 마르도록 투자를 권유한다. 그래야 돈이 벌리는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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