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내림세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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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6일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4.0포인트가 떨어진 1백57.8을 기록, 금년 들어 최악의 상태다.
28개 종목이 무더기로 하종가를 기록하는 가운데 특히 건설 주들이 19개를 차지했다.
개장 초부터 밀리기 시작한 주가는 일부 건설업체들의 부도 설과 엉뚱하게도 사채동결 설까지 나돌면서 더욱 낙 폭을 벌려 나갔다.
시장은 한마디로 흉흉한 분위기. 앞으로도 주가는 더 떨어질 것으로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경제가 어제 오늘 갑작스레 나빠진 것도 아닌데 대 채 왜 이처럼 야단들인가.
무엇보다도 주가를 좌지우지 해 온 소위「큰손」들의 손바람에 이상이 생긴 탓이다.
사채 업을 겸하게 마련인 이들 큰손들이 기업어음을 이용해 주가조작을 하다 실패하자 일부기업들을 부도위기로까지 몰아넣은 결과라는 것이다.
큰손들의 전통적인 수법은 기업들에는 사채를 빌려주고 고리를 챙기는 한편 기업으로부터 담보로 받은 어음을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현금을 만들어, 그 돈으로 주식을 사들여 이중으로 재미를 보는 것이다.
소문난 큰손들은 1백억∼2백억 원 정도 동원하는 것쯤은 간단하다. 규모가 클 때는 그룹을 짜서 공동 매수작전도 벌인다.
1급 정보능력을 바탕으로 호재가 될 만한 갖가지 정부조치는 점쟁이처럼 알아맞힌다.
『시작!』하는 전화 한 통화로 증권회사 창구를 통해 매수작전의 신호가 떨어진다. 끌어올린 주가가 상투다 싶으면 일제히 던지고 자취를 감춘다.
작년 6, 7월 한 때 까닭 없이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파동을 일으킨 것도 바로 이들의 작품이었다.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계속 어려워짐에 따라 큰손들은 더욱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게 됐다. 예컨대 1백억 원을 기업에 빌려주면서 2백억 원의 수표 또는 백지어음 발행을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빌려준 돈의 갑절에 해당하는 어음을 받아서 이것을 다시 군소 사채업자들에게 판 돈으로 주식투자를 반복하면서 눈덩이처럼 차익을 불려 왔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 실패를 모른다던 J씨·K씨 등 증권가의 소문난 큰손들조차 몰려들기 시작했다.
애써 매수작전에 나서도 그전처럼 손님이 붙어 주질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워낙 경기가 안 풀리는 데다 일반투자자들도 「한 번 속지 두 번 속겠느냐」는 경계심리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끌어올린 상투꼭대기에 스스로 올라앉은 꼴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최근 들어 건설 업체를 비롯한 일부 상장회사들의 자금난이 부쩍 심해지자 문제는 설상가상이 됐다.
이들은 바로 증권시장 큰손들로부터 거액의 사채를 끌어 써 왔던 터였고 이 때 발행된 수표나 어음은 큰손들이 주식투자를 위해 제3의 사채업자에게 팔아 넘긴 것들이다.
해당기업들의 자금난이 심각하다는 소문이 나돌자 사채업자들은 불안해진 나머지 가지고 있던 어음을 일제히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사태는 급전직하, 일부 기업어음이 50%까지 할인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모 증권회사 간부는 다음날 새벽 대부로 행세하는 한 사채업자를 찾아 진상을 물었다. 묵묵부답이었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차린 그는 회사로 돌아온 즉시 문제의 기업어음에 대한 적신호를 올렸다.
자금난은 더욱 가중되어 갔다. 더구나 큰손들이 사채를 빌려주면서 담보성격으로 받아 간 견실 어음까지도 사채시장에 팔아 넘긴 탓으로 기업들은 자신들이 빌어 쓴 돈 이상으로 부당한 빚 독촉을 받게 됐다.
결국 큰손들이 저지른 주가조작의 후유증에다 일부기업의 극심한 자금난, 그리고 사채업자들의 즉각적인 자금회수 등 이 어울려 요 며칠 사이의 폭락장세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제2의 증권파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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