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이 뛰니 투기는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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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땅 투기 수법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투기지역 확대 등 규제와 세무조사 강화로 숨통이 막히자 이를 뚫기 위한 갖가지 수법이 동원되고 있다. 전통적인 투기 수법인 외지인의 위장 전입은 물론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땅을 살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한 탈법까지 나타나고 있다.

땅 투기를 부추겨왔던 기획부동산(개발지역 주변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쪼개 파는 업체)도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영업 방식을 바꾸고 있다.

전문가들은 쏟아지는 개발 재료를 업고 토지시장에서 투기성 자금이 떠나지 않고 있어 규제가 늘수록 땅 투기 수법은 지능화할 것으로 본다.

◆ 편법거래 더 대담해져=종전엔 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규제가 없는 주변 지역으로 돈이 옮겨갔다. 하지만 요즘은 웬만한 곳은 허가구역.투기지역으로 묶이다 보니 투자금이 다시 규제 지역으로 회귀하고 있다. 위장전입.다운 계약서 작성 등 편법 거래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홍모씨는 지난 4월 경기도 화성시로 위장전입한 뒤 지난달 초 화성시 팔탄면의 관리지역 농지를 샀다. 홍씨는 토지거래허가를 받으려면 '6개월 현지 거주' 요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10월께 거래를 하는 것으로 계약서를 썼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인천시 강화군의 농지 327평을 산 최모씨는 한 술 더 떴다. 계약과 동시에 강화군의 한 농가로 전 가족의 주소지를 옮겼고, 계약일로부터 45일 뒤에 잔금을 주면서 '처분금지 가처분등기'를 했다. 그는 6개월이 되는 8월에 토지거래허가를 받아 소유권이전을 마칠 예정이다.

2년 전 화성시에서 농지 248평을 샀던 안모씨는 최근 땅을 팔면서 실거래가보다 값을 50% 낮춘 다운 계약서를 매수인에게 요구했다. 대신 값을 깎아줬다. 세금을 내는 것보다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JMK플래닝 이영창 부장은 "투자할 만한 곳이 대부분 허가구역으로 묶이자 투자수익 내기가 쉽지 않은 외곽 지역보다 차라리 허가구역 안에서 투자하려는 이들이 늘었다"며 "규제를 피하려다 보니 거래 수법도 훨씬 지능화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 계.공동투자는 시들=친척.직장동료끼리 계나 투자클럽을 만들어 공동투자하던 모습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규제 강화로 투자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부터 친척 7명과 투자모임을 만들어 충청권과 경기도 강화.이천의 땅에 투자했던 자영업자 이모씨는 최근 모임을 깼다. 땅값이 오르자 소유권과 이익 청산 문제로 분쟁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행정복합도시 주변에 산 땅이 세무조사대상이 된 것도 이들의 투기심리를 꺾었다.

대학원 동창끼리 땅 투자클럽을 운영했던 백모씨는 "규제가 워낙 많고, 내년부터 땅도 실거래가 신고대상이 돼 공동투자로 이익을 회수하기가 어려워져 투자클럽을 해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기획부동산도 수법 바꿔=이들이 흔히 써온 매매 수법은 미등기 전매. 그러나 미등기 전매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요즘은 소유권을 이전한 뒤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 지분만큼 소유권을 다시 넘기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기획부동산은 지난 3월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의 임야 7000평을 평당 10만원에 샀다. 이 회사는 땅주인으로부터 '매매에 관한 모든 사항을 넘겨받는다'는 내용의 위임장을 받아 일반인에게 미등기 전매 방식으로 쪼개 팔려고 했지만 최근 단속의 손길이 뻗치자 판매 수법을 바꿨다. 땅주인에게 근저당권 설정등기를 해주고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분할 매각이 아니라 개발사업을 하는 것처럼 속여 팔고 있다.

판매 방식도 친인척을 통한 '일대일' 식으로 바뀌었다. 전화로 땅을 파는 텔레마케팅에 대한 단속이 거세진 데다 투자자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고 있어서다. 부동산퍼스트 곽창석 이사는 "1980년대 써먹던 친인척 판매 방식이 다시 유행한다. 기획부동산이 급증했지만 단속은 강화돼 별의별 판매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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