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어댑테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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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댑테이션'(Adaptation)의 그물은 촘촘하다. 두 개의 다른 사건을 하나의 얼개로 엮어가는 솜씨가 정교하다. 잘 짜인 플롯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퍼즐 풀기 같은, 즉 관객의 지능을 테스트하는 '고약한' 영화는 아니다. 대중적 재미를 갖춘 작품인 것이다.

*** 시나리오 작가의 고뇌

'어댑테이션'은 영화 제작,특히 시나리오를 다룬 영화에 관한 영화다. 영어로 각색을 뜻하는 제목처럼 뉴요커 잡지의 기자 수전 올리언이 쓴 베스트셀러 '난초도둑'을 영화화하는 과정이 주로 그려진다.

원작은 진귀한 난초를 찾아 오지를 찾아다니는 탐험가 존 라로시의 열정을 다룬 논픽션이다. 극적 사건, 예컨대 기승전결의 구조가 거의 없는 원작을 그럴 듯한 영화로 재창작해야 하는 시나리오 작가의 고뇌가 중심축을 이룬다.

무엇보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주목을 받았던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을 주인공으로 삼아 흥미롭다.

천재 작가로 소문난 그가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실제로 그는 이 영화의 대본을 썼다-니컬러스 케이지의 걸출한 연기로 되살아났다. 원작자에게 가까이 가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작가의 소심한 성격이 코믹하게 펼쳐진다.

이런 가운데 찰리 카우프만은 교묘한 트릭을 삽입했다. 뭔가 창조적인 발상에 고민하는 그 자신과, 그 반대로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며 작가의 꿈을 이루는 그의 쌍둥이 동생 도널드를 대비시키는 것.

*** 케이지 1인 2녁 빛나

찰리와 도널드란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케이지 덕분에 작가의 시도는 제법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형제가 동시가 등장하는 장면-후반 작업에서 컴퓨터로 합성-에서 배우는 주로 작은 테니스 공을 상대로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한다.

여기에 만족할 카우프만이 아니다. 그는 또 한번 영화를 비튼다. 갑갑한 일상에 지쳐있던 기자 수전(메릴 스트립)이 탐험가 라로시(크리스 쿠퍼)에게 점점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첨가했다.

물론 원작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각색 도중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벽에 부딪혔던 찰리가 그들의 비밀스런 관계와 욕망을 훔쳐보는 대목에선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냄새도 난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스파이크 존스 감독 또한 이번 작품에 동참해 어딘가 지적이면서도 관객의 눈높이를 무시하지 않은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8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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