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에서』는 평범한 속에 사물을 보는 밝은 눈 지녀|서툰 것 같은 『꽃밭에서』…버릴 수 없는 삶의 소박성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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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좋은 시를 쓰자면 먼저 질 좋은 감성을 타고 나야한다. 그런데 감성이라는 것은 속에 감추어지고 겉으로는 재어볼 수 없는 것이어서 끊임없는 사고와 영혼의 뒤척임으로 갈고 닦지 앉으면 안된다. 『범어사에서』는 평범한 듯 하면서 깊은 맛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산새는 저희들끼리 춘곤을 쪼아대고><선본산 현판 위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같은 어귀는 탁 트이지 못한 듯 하지만 사물을 보는 눈이 밝지 않고는 좀처럼 얻어낼 수 없는 대목이다.
『광주산성에서』는 역사의 어제와 오늘을 대조하는 진지함이 전편에 흐른다.
그러나 기행시라고 해서 드러난 이야기만 있고 안으로 솟구치는 것이 없어서는 안된다. 역사의 표면이 아니라 내면에 시선이 박혀야한다.
『꽃밭에서』는 서투른 듯 하면서 시의 바탕에 맺힌 것이 있다. <뱃고동 올적마다><기다림도 바닥이 난>같은 표현은 시 이전의 것인데 용케도 버릴 수 없는 삶의 소박성을 담고있는 것이 이 작품의 특색이다.
『산을 오르며』는 지은이에게 졸업장을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아직은 시의 세밀한 것에 너무 빠져있고 크게 올려오는 것이 없다. 현대라는 복잡한 괴물을 실낱같은 서정만으로는 옭아맬 수가 없다.
『풍경』은 아주 잘익은 과일의 단맛 같은 소품이다. <나비 요요 날아><비비새 구름을 긋고 와>는 일품이다. 지은이는 여기에 빠지지 말고 더 큰 흐름을 타기를.
『바람』도 지은이의 이름을 여기서 자주 만나게 되는데 조금씩 자리가 잡혀가는 것 같아 반갑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시조의 외형률보다는 내재율에 시를 올리는 기법이 모자라는 점이다.
『아지랑이』는 시가 말의 재롱에 치우쳐있다.
『개나리』는 아직은 솜씨가 어리지만 시를 잘 쓸수 있는 자질이 엿보인다. 꾸준히 공부하기 바란다.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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