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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거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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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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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칼 세이건은 인간과 문명의 미래를 많이 걱정했던 우주과학자다. 물론 세이건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 중에 인간의 내일을 우려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세이건이 좀 다른 점은 그가 좋고 나쁜 것에 대한 윤리적 가치분별과 판단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비판한 것 중에는 인류의 ‘진화적 습성’에 관한 것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몸에 붙여온 버릇들 중에는 ‘못된’ 것이 많다.

그런데 진화가 붙여준 습성이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세이건이다. 이런 주장을 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마치 용감한 인문주의자처럼, 인간의 ‘개선’ 문제를 많이 생각했던 사람 같아 보인다.

 진화가 인간에게 붙여준 ‘나쁜 습성’이란 어떤 것인가. 세이건이 만든 습성목록에는 대표적으로 다섯 개쯤이 올라 있다. 싸우고 죽이기 좋아하는 호전성, 그릇된 사회적·문화적 관습,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이방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 증오와 불신의 버릇 등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습성들은 적대적 환경에서 인류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집단적·부족적 특성들이기도 하다. 지도자에게 맹종하고 싸우기 좋아하고 이방인을 의심하고 적개심을 품는 것 등에 ‘진화적 이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이건 같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 이득들은 이제는 인류가 버리고 넘어서야 할 낡은 ‘파충류적’ 열정들이며, ‘인류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는’ 파괴적 요소들이다.

 버려야 할 것은 이런 버릇만이 아니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 행성은 손에 쥐면 부서질 것 같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행성은 생명을 품고 과학 문명을 일으키고 우주를 연구하기 시작한 소중한 고장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범위 안에서는 이런 성취를 이룩한 곳이 지구 말고는 없다.

인간은 과학을 아는 유일한 생물종이다. 우주는 그 인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 이처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행성에서 생명은 보존되고 문명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인간이 자기 존재의 품위를 위해 청산해야 할 것들이 또 있다. “극단적 형태의 민족 우월주의, 우스꽝스러운 종교적 광신, 맹목적이고 유치한 국가주의”가 그런 것이다. 지구는 “이런 것들이 발붙일 곳이 결코 아니다.”

 세이건을 읽다 보면 수천 년 전 출현한 유대경전 ‘레위기’의 한 대목이 불쑥 머리에 떠오른다. “너희는 거룩하라.”(19장 2절) 유대민족의 신 야훼가 족장 모세를 시켜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게 했다는 당부의 언어이자 명령이다. 경전 성립의 유대적 배경을 구태여 파고들지 않더라도, 한 민족집단을 이끌어야 했던 모세에게 최대의 관심은 집단의 강한 결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속의 방법은 무엇인가? “너희는 거룩하라”가 그 방법론 같다. 결속 명령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보편적 가치와 도덕성의 안내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결속의 열정만으로 뭉쳐진 명령은 ‘부족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욕심쟁이 인간이 무슨 수로 ‘거룩’해질 수 있을까? ‘레위기’에 나오는 “거룩하라”의 방법론은 이런 것이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포도원의 떨어진 열매도 다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더 깊은 대목도 나온다. “이방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 중에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한때 이방인이었느니라.”

부자 사랑에 빠져 약자와 가난한 자를 한없이 경멸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한국의 다수 기독교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다. ‘레위기’의 이런 구절들은 인간 존재가 어떻게 이 우주에서 의미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 그 방법론을 일러주기도 한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