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 Report] 고유가 시대 근본 처방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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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규 한국원자력연구소장

▶ 영광 원자력발전소. [중앙포토]

원유가격이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섰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조만간 100달러도 넘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전망마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원유가격이 이렇게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원유 생산설비가 노후화되어 생산원가를 높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라크 전쟁과 같은 정정불안과 최근 끝난 이란 대선에서의 강경 원리주의자 후보 당선과 같은 중동 정세 변화도 유가 상승에 큰 몫을 한다. 또한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공업국들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원유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도 국제유가를 끌어올린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경제 상식에서 찾을 수 있다. 에너지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어떤 자원이든지 그 자원의 절반을 사용한 시점에서는 해당 자원의 가격이 갑작스레 급등한다고 한다. 석유의 경우,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매장량의 절반을 사용했기 때문에 최근의 원유가격 상승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무한정한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가격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와 같은 에너지 수급구조의 위기에 직면하여 우리나라의 2004년도 에너지 수입액은 무려 496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총 수입액의 22% 수준이며, 우리나라 수출 1, 2 위를 기록하는 반도체 수출액 265억 달러와 자동차 수출액 266억 달러를 합한 금액에 버금가는 액수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과 수력을 제외하고는 모든 에너지를 해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에너지 해외의존도는 무려 97%에 달한다. 국가 에너지 수급이 이처럼 취약한 상황에서는 국가의 존립에 필수적인 에너지 안보의 확립이 불가능하다.

그뿐 아니다. 석유.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의 사용은 산성비, 지구온난화 현상과 같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다. 특히 화석연료의 연소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는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이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제거할 수 있는 상용기술이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환경부담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대량의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우리가 국가 에너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에너지 소비에 따른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의 확보와 함께 국내 자원이 전무해 해외에서 수입에만 의존해 오던 해외 자원 의존형 에너지정책에서 탈피할 시점이다. 더 늦기 전에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환경에 부담을 주고 막대한 외화 낭비를 초래하는 자원 의존형에서 환경 친화적이고 두뇌와 기술만 있으면 생산 가능한 기술 주도형 에너지정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수반해야 한다. 그 첫째는 에너지 절약에 대한 방법과 이의 홍보다. 아무리 자원이 많고, 아무리 에너지를 많이 생산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에너지 다소비 구조에서는 공급이 버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에너지 사용에서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 개발이다. 효율성 증대는 곧바로 필요 에너지의 절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 가지고는 세계에서 10위권에 있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셋째로는 국가 에너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에너지 기술에는 현재 국가 전력생산의 40%를 공급하는 원자력과 대체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태양열이나 풍력 등이 모두 포함된다. 대체 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효율이다. 따라서 대체 에너지원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연구 개발이 절실하다. 이와 병행하여 원자력의 이용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크게 달라져야 한다. 그 모범적인 사례는 이웃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원자력에 대한 공포가 심한 나라는 일본일 것이다. 그 무섭다는 원자폭탄을 두 번이나 맞으며 전쟁에서 패배했고, 유난히 잦은 지진과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는 강진을 자주 경험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세계에서 원자력을 가장 잘 이용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원자력의 효용성을 정부와 일본 국민 모두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에너지 자원이 가장 풍부하기로 소문난 미국에서조차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에너지 자립을 주장하고 있다. 그 골자는 환경 친화적이고 국산 에너지인 원자력의 이용을 대폭 확대해 유엔 기후변화협약에도 대처하고 중동산 석유에의 의존도도 낮추겠다는 발상이다.

고유가 시대를 극복하고 우리도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다. 바로 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기술 주도형의 에너지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이를 토대로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곧 다가올 '수소경제' 시대에 대비하여 원자력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 향후 20년 동안 대체 에너지의 비중을 10%로 높이고, 수소 에너지를 10% 사용하며, 원자력 에너지의 비중을 지금의 15% 수준에서 20%로 올리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에서 국산 에너지의 비율은 40%가 된다. 그렇게 되면 매년 원유 수입에서 약 215억 달러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의 주범인 탄산가스의 방출량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 확대에 따르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안전성 문제와 방사성폐기물 처리문제, 우라늄 자원의 고갈 등이다. 이 세 가지 모두는 국가 차원에서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이지만, 원자력을 이용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공통으로 맞닥뜨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 일본, 프랑스, 그리고 우리나라 등 세계적으로 원자력을 이용하고 있는 10개국은 공동으로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경제적이며, 핵확산 저항성이 높은 원자력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우리의 우수한 두뇌를 이용해 원자력기술을 개발한다면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다.

박창규 한국원자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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