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일까 허구일까 … 시인들이 낸 소설 두 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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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백과 소설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어떤 가공 과정을 거쳐야 우리는 경험에 소설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일까.

 작가의 경험을 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듯한 장편소설 두 권이 최근 잇따라 출간됐다. 시인 최영미(53)씨의 『청동정원』(은행나무)과 역시 시인인 김신용(69)씨가 쓴 『새를 아세요?』(문학의전당)이다.

 두 소설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를 다룬다.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1994년)로 이름을 알렸던 최씨는 ‘운동권 후일담’이라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1980년대 서울대 학생운동권의 속살을 들춰냈다. 14세 때부터 온갖 힘든 일을 해온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진 김씨는 80년대 초반 홍등가로 유명했던 서울역 부근 양동 일대의 풍경을 그렸다.

 하지만 ‘고백 같은 소설’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는 다르다. 최씨는 소설 첫 장과 맨 뒤 에필로그에서 등장인물과 사건이 허구임을 거듭 강조했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도 소설 내용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면서도 “단지 소설로 읽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김씨는 작가의 말에서 “어쩌면 이런 형식의 글을 소설 이전의 소설, 소설 이후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고 밝혔다. “소설을 쓰는 동안 어떤 소설적 상상력이나 허구에 기댄 형식, 줄거리의 플롯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고도 했다.

 최씨가 소설임을 강조한 이유는 역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다. 출판사 은행나무 측은 “자칫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변호사를 통해 법률적 검토를 마쳤다”고 밝혀 오히려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여주인공 애린의 연애와 결혼, 파경 과정이다. 운동권 4년 선배 동혁과의 사랑은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고 할 만큼 끔찍하다. 최씨는 “당시 운동권과 한국사회에는 동혁처럼 폭력적인 남성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운영하는 시공사임이 어렵지 않게 짐작되는 출판사에서 애린이 일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애린이 소설 속 장재욱 사장 방에 불쑥 들어서는 순간 장씨가 측근들과 긴밀하게 얘기를 나누다 당혹스러워 하는 장면은 실제 전씨 일가의 비자금과 관련 있을 거라는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김신용씨의 소설은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팔다리가 가늘었던 장애인 창녀와의 애틋한 추억을 그린 작품이다. 약물에 의지해 몸을 팔다 하루살이처럼 값싸게 죽어나가는 윤락녀들의 삶은 현대판 지옥도가 따로 없다. 김씨는 “뭔가 허구를 덧붙이면 체험이 주는 강렬함이 떨어질 것 같아 고백하듯 글을 썼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황종연씨는 “박완서나 이문열, 신경숙 등 한국의 소설들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체험에 근거한 작품이 많은 편이고 독자들 역시 그런 소설에 너그러운 편”이라면서도 “개인의 특별한 체험을 보다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소홀할 경우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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