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권익" 앞세워 "현실참여"|가톨릭 농민회의 활동을 알아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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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의 배후 조종자 김현장(32)을 비롯, 광주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주도했던 정순철(27) 등 일당 5명이 가톨릭 농민회 소속으로 밝혀짐으로써 이 단체가 또 다시 세론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이번 사건 외에도 76년10월의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 요구대회, 79년8월의 오원춘씨(당시 안동교구청기분회장) 사건 등으로 주의를 끌었던 가톨릭 농민회는 어떤 단체인가. 당국의 수사를 계기로 이 단체의 전부를 알아본다. 54년 벨기에에서 처음 발족, 이보다 10년 뒤 우리 나라에 상륙해 전국 1백35개 분회에 1천3백여 명의 회원을 안고 있는 가톨릭 농민회는 「농민의 권익옹호와 인간의 존엄성 및 정의구현」을 설립목적으로 하고있다.

<연혁>54년 벨기에서 태동
가톨릭 농민회가 처음 생긴 것은 지난 1954년, 벨기에에서 이탈리아·서독 등 8개국의 천주교 신도들이 모여 천주교 산하 18개 단체를 발족시킬 때 가톨릭 농민청년회를 함께 발족한 것이 효시.
회원국 농민신도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공동으로 필요로 하는 정보를 교환하는 것 등이 그 목적이었다.
우리 나라에 이 단체가 처음 생긴 것은 이보다 10년 뒤인 64년10월. 경북 왜관의 성베네딕트 수도원안에 농촌청년회가 설치되면서였다.
이 농촌청년회는 태동기를 거쳐 66년10월 베네딕트 수도원장인 독일인 「오로」 신부에 의해 「한국가톨릭 농촌청년회」 로 정식 창립됐고, 70년9월 국제가톨릭 농민회에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한 뒤 72년4월 가톨릭 농민회로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주교 안에서는 77년4월 주교회의에서 주교회의 산하기구로 인준을 받은데 이어 지난해12월 사목(사목) 담당주교의 산하기구로 인준을 받았으나 문공부에 정식 등록된 단체는 아니다.

<목적·조직>전국에 백35개 분회
가톨릭 농민회는 회칙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평화구현활동을 적극화하고 농촌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전개하며 ▲농민의 문화 및 경제생활향상과 권익옹호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지역사회 균형과 조화 있는 발전을 위한 활동 및 연구조사·홍보교육사업을 전개하는 것 등을 그 설립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의 본부는 충남 대전시 동구 성남동 산6 가톨릭 농민회관.
천주교 대전교구의 황민성 주교와 이종창 신부가 각각 담당주교와 지도신부.
가톨릭 농민회기구는 회장 밑에 사무국, 그 밑에 ▲총무부 ▲조직교육부 ▲홍보부 ▲협동사업부 ▲조사부 ▲여성부 등의 6개 부를 두고 지방에 l0개 연합회(경기·원주·춘천·충북·충남·전북·전남·안동·대구·경남)와 1백35개 분회(읍·면 이상지역) 및 마을 단위의 4개 지회를 두고 있다.
현재의 회장은 박재일씨(44·강원도 원주시 개운동 51의3).
등록된 회원 1천3백52명이 매년 1회씩 내는 회비(액수미상)로 회원들의 의식화 수련회를 열고 「거둠」 「현장」 등 수시로 이름이 바뀌는 비 정기간행물을 발간하거나 농지세제 개정촉구 등 농정시책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작성, 배포하고 있다.

<활동>비 정기간행물 발간
관계당국에 따르면 가톨릭 농민회는 76년10월 함평 고구마피해보상 요구대회를 시작으로 강력한 사회참여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농민들은 고구마를 장려하는 당국의 시책에 따라 많은 고구마를 생산했으나 당국이 이를 전량수매하지 않았다고 해서 농민들이 불만을 느끼고 있을 때 가톨릭 농민회가 고구마피해보상 요구대회를 개최했다.
이를 시작으로 가톨릭 농민회는 농정을 비판하는 활동과 함께 유신헌법 철폐운동 등을 벌였으며 근로자를 위한 기도회, 「짓밟히는 농민운동」 제하의 유인물 배포 등 목소리를 높여 사회참여 활동을 벌였고 79년8월 오원춘씨 사건을 맞았다.
이 사건은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 청기분회장이던 오씨가 처자를 두고도 다른 여자와 정을 통해 일어난 가정불화 때문에 15일 동안 울릉도를 여행하고 와서는 『농민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기관원에게 끌려 다니며 뭇매를 맞았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신부 등 2명과 함께 구속됐던 사건.
오씨 등은 그 뒤 석방됐으나 구속 중 오씨의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는 천주교 측의 주장이 있자 당국이 각계인사들과의 면담까지 주선, 면담내용을 TV에 방영하는 등 많은 화제를 던졌었다.
가톨릭 농민회원들에 의해 저질러진 광주미문화원 방화사건은 80년12월에 일어났으나 계엄하의 보도관제로 보도되지 않았던 사건.
가톨릭 농민회 광주분회장인 정순철이 동료회원 4명 등 5명과 함께 80년12월6일 가톨릭 농민회 전남연합회 사무실에서 방화를 결의한 뒤 12월9일 밤 9시쯤 광주 미문화원지붕에 올라가 휘발유와 석유를 붓고 불을 질렸었다.
사건 후 범인 중 5명은 검거됐으나 정순철은 도피행각을 벌여 지난 1월 일본밀항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뒤 전남 영광에서 지난달 25일 검거됐다.
당국은 이 같은 일련의 탈선활동에 비춰 가톨릭 농민회가 종교단체로서의 행동범주를 벗어난 의식화단체로 변모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오홍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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