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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관계 「미제」줄줄이 풀려|범인 문·김 등 검거까지…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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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희대의 강력 사건치고는 비교적 빨리 해결됐군요.
사건발생 2주일만에 주범을 비롯한 일당이 일망타진돼 결국 반국가적인 불순세력은 땅이 넓은 미국 등과 달리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입니다.
-주범 문과 그의 애인 김은숙 등이 자수하고 난 뒤 밝혀진 사실이기는 하지만 수사가 좀더 용의주도했더라면 사건해결이 더 빠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김은 범행 후 27일까지 10일 동안이나 자기 집인 Y교회 사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가 보자기를 확인하러온 형사대와 집에서 맞닥뜨리기까지 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는 문의 연고지 수배도 늦은 감이 있어요. 문은 범행 2일 뒤인 20일 서울 창천동 신라당구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형(28)을 만나고 갔으나 경찰이 잠복근무를 한 것은 이보다 훨씬 뒤였지요.
-경찰은 당초 사건해결을 낙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장 광주 미 문화원방화사건의 주범 정순철이 지명 수배됐고 이어 학원소요사건의 배후 조종인물들인 이호철·박계동 등이 수배대상에 포함돼 이중 정과 이를 검거하는 수확을 얻었지만 범인들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신흥불순세력으로 밝혀진 것이 아닙니까.
-이번에도 시민의 제보가 해결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던져주었습니다. 경찰수사보다는 시민제보가 한발 앞선 셈이지요. 문 등이 자수하기까지에도 종교단체의 힘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으니까요.
-범행은 완벽할이 만큼 치밀했지만 그들이 몸을 숨기기에 완벽한 장소는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문이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경찰수사진에서는 한동안 경위를 잘 몰라 어리둥절하기도 했어요. 문 등의 신병을 확보한 수사기관이 경찰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일선 경찰에서는 비상 근무령 해제지시가 먼저 떨어져 당혹스런 표정들이었습니다. 1일 하오 3시 해제령이 나온 직후 이 때문에 서울시경·치안본부 등에는 검거를 확인하려는 문의가 빗발치듯했읍니다.
-문이 잡혔다는 제 1보가 서정화 내무장관을 거쳐 송동섭 치안본부 제 3부장에게 전달된 것은 정확히 1일 하오 2시50분이었는데 송 치안감도 이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취재기자가 제 3부장실에 살다시피 하면서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그는 『모른겠는데요. 아마 다른 기관인가보지요. 아직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하는 대화를 나눠 직감에 문이 잡혔다고 생각했읍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애써 태연한 체 했으나 무엇인가 급히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바뀌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읍니다.
10분 후 일제전화를 통해 비상 근무령이 해제되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문 검거」라는데 자신이 생겼지요. 덕분에 중앙일보가 특종을 할 수 있었고 방송 스파트뉴스는 이보다 40분이나 뒤늦게 들을 수 있었읍니다.
-문과 김이 자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지막 수사에 총력전을 펴고 있던 부산 수사본부 요원들은 후련해하면서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허탈한 표정이 역력했어요. 이균범 시경국장은 수사본부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걸려온 경비전화를 받고 즉석에서 『문 등을 강원도에서 검거했다.
이 시간부터 비상령을 해제한다』고 짤막하게 발표한 뒤 집무실로 달려가 상부에 확인전화를 하기에 바쁜 모습이었읍니다.
-여러 수사기관이 이번 사건에서처럼 치열한 경쟁을 벌인 적도 드물 겁니다.
전남 영광에서 정순철을 검거하기 위해 전남도경 팀이 출동했으나 현장에 도착해보니 불과 15분전에 다른 수사기관에서 정을 데리고 갔다는 말을 듣고 허탈한 기분으로 되돌아오고 말았지요.
-서울에서 이호철이 검거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부산시경 팀과 치안본부 팀이 이를 잡아 갈 때까지 서울시경에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요.
-이는 은신중인 서울 명동 별 셋 음식점에서 치안본부 수사관들에 의해 검거됐는데 이 때 다른 종업원들은 사정도 모르고 『괴한들이 우리 종업원을 데려갔다』고 관할파출소에 신고까지 했답니다.
파출소에서는 관할 중부서에 확인을 했으나 본서에서도 전혀 모르고 있어 현장에 나가 수배전단을 내보인 끝에 이 임을 알고는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치안본부에서도 문의 연고지 중에 의식화훈련장소인 원주를 떠 올렸으나 현지로 급파된 수사요원들은 문 등이 이미 다른 기관에 의해 압송되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지요.
-문 등의 검거에 5천만원의 현상금이 걸린 것도 유례없었던 일이지요.
신고러시 사태를 빚은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를 나타낸 것이기도 하지만 거액의 현상금 탓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범검거에 수훈을 세운 신고를 한 장모씨(40·여)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부산진 경찰서 Y경장(35·여)이 대신 현상금을 받았는데 이 장면이 TV를 통해 방영되자 사연을 모르는 친지·이웃들이 축하전화와 한턱내라는 전화가 빗발쳐 남편 윤모씨(38)와 부부싸움을 벌이기도 했답니다.
-범행장소가 미 문화원이었던 탓인지 다른 외국기관의 관심도 높아 주한 브라질대사관에서는 문이 그린 노동전사상이 『브라질국회의사당 점문 앞에 있는 입상조각과 똑같다』는 사실을 치안본부에 알려오기도 했어요.
-수사경쟁 못지 않게 취재기자들도 2주일 동안 거의 매일 밤샘을 하는 등 보도에 열을 올렸지요.
범인들이 이용한 부산 산장여관 주인은 사건이 터지자 처음엔 『영업을 망치게 됐다』고 울상을 지었으나 연일 몰려드는 취재진과 수사경찰이 대부분 이곳을 숙소로 점해 2O여 개의 방이 초만원을 이뤄 오히려 덕을 보기도 했어요.
-이번 사건으로 수사본부가 지출한 경비는 2천여만원으로 1백60명의 수사관이 하루평균 1만2천5백원씩 쓴 셈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산시내 학원 가의 불온 지하서클의 정체가 뿌리째 그 모습을 드러냈읍니다.
이 때문에 부산시내 각 대학에 등록된 서클은 물론지하조직까지 모두 들춰내 경찰은 『이제 약간의 움직임만 있어도 즉시 레이다에 걸릴 만큼 자신이 생겼다』고 장담할 정도가 됐고 『1∼2년 걸릴 작업을 단 2주일만에 해냈다』고 후련한 표정들이었읍니다.
-이번 사건의 해결과 함께 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부산여대 불온낙서사건 등 굵직한 미제 사건들이 덩달아 풀리고 학원소요 배후조종인물·불순세력 등에 대한 계보파악 등이 철저하게 이루어진 것도 큰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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