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만 빼놓곤 숙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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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으로 도망친 한국인 빨치산들은 바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창봉, 석산, 김병갑, 오백룡, 지병학, 백학림등은 오케안스크 근처의 국영농장에서「공백기간」을 보내면서 결국에는 소련군 정찰부대의 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들중 오백룡등 일부는 소련계한국인과 해방전부터 친교관계를 맺고 있었다.
오백룡, 백학림등 김일성직계의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대부분이 김일성에 의해 숙청됐다. 해방후 비교적 높은 지위에 올랐던 김창봉(한때 민족보위상), 석산 (사회안전상), 지병학, 김병갑 (군단장)등은 제88여단 출신 빨치산보다 탄압을 받지않았다. 오케안스크의 사람들은 소부대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공훈도 많이 세웠다.
그들은 소련출신 한국인과 제88특별여단출신 빨치산의 중간쯤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 러시아어도 잘했고 소련인과의 의사소통도 원활했다.
45년 해방이 되자 제88특별여단의 한국인대원들은 프카초프호라는 어선을 개조한 군함을 타고 추석전날인 8월19일 원산항에 입항했다.
88여단에서 같이 공작활동을 했던 소련계한국인 이동화, 문일(문에리) ,유성철, 박길남, 김봉률, 이청송, 김창국, 김파웰등도 그일행과 함께 원산에 상륙했다.
이들 일행의 원산항 상륙소식은 원산주둔 소련군사령부, 조선공산당강원도단체의 지도자, 그리고 이미 북한에 와 활동중인 소련계한국인 한일무, 주송원, 정률및 그밖의 일부인사들이알고 있었다.
그중의 한사람은 김일성의 원산상륙광경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날 소련군사령부의 대령이 나에게 오늘 김일성이 오는데 부두에 환영하러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김일성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도 있고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배가 도착해서 맨처음에 내린 사람은 머리칼이 반백으로 단정한 용모의 소령견장을 한 중노의 인물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저사람이 그애국자 김일성장군이구나」하고 생각했다.다른 인물들에게는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날 소련군인과 함께 내린 사람은 약 50명 정도였다. 뒷날 알았지만 그날 내가 김일성장군이라고 생각한 인물은 이동화소령이었다.
이동화소령은 제88특별여단내의 한국인 사이에서 가장 계급이 높았다. 그는 평양에서 공산당이 조직되었을때 초대조직부장이었다. 그의 러시아 이름은 「와시리·후드로비치」 였는데 이동화라는 이름은 프카초프호 선상에서 김일성이 직접 지어주었다고 자랑한적이 있다. 동화란 동방의 중국이란 의미이므로 김일성의 중화숭배 사상이 은연중 표현된 것으로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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