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빠삐용' 아직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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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영화 ‘빠삐용’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샤를 브뤼니에가 지난달 31일 파리 교외의 양로원에서 자신의 104번째 생일을 맞아 축하 샴페인 잔을 들고 있다. 아래 사진은 영화 빠삐용의 스티브 매퀸. [사진=르 파리지엥 제공]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이 아직 살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AFP 통신은 26일 "1969년 출판된 베스트셀러 소설 '빠삐용'의 저자 앙리 샤리에르는 73년 67세에 숨졌지만, 그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영웅은 아직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달 31일로 104번째 생일을 맞은 샤를 브뤼니에. 그는 파리 교외의 양로원에서 살고 있다. 73년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빠삐용'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 작품으로 평가돼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다. 주인공의 별명도 빠삐용이었다.

◆ "빠삐용의 모험은 브뤼니에의 것"=AFP 통신은 브뤼니에가 살고 있는 양로원의 카드넬 원장의 말을 인용, "소설 '빠삐용'에 등장하는 모험 대부분이 브뤼니에의 것"이라고 보도했다. 카드넬 원장은 "브뤼니에가 이따금 자신이 샤리에르와 같이 형무소에 있었다는 것과 샤리에르가 자신의 경험담을 도둑질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털어놓았다. 브뤼니에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증거도 있다.

브뤼니에의 몸에는 주인공 빠삐용의 가슴에 새겨진 것과 같은 나비 문신이 있다. 또 브뤼니에의 왼손 집게손가락은 빠삐용의 것처럼 심하게 훼손돼 있다. 소설 '빠삐용'이 출판되기 1년 전인 68년에 나온 '카이옌에서의 값비싼 자유'라는 책에서도 저자인 로베르 에르베는 '샤를 브뤼니에'라는 이름을 언급했다. 그 책에서 브뤼니에는 조니 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한 인물로 나온다.

◆ "샤리에르는 빠삐용이 아니다"=소설 '빠삐용'은 출판되자마자 자전적 소설이라고 주장한 저자의 발언을 놓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70년 유명한 탐정소설 작가인 제라르 드 빌리에는 '투옥된 빠삐용'이란 책에서 "샤리에르의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일관성에 치명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70년 발행된 '뉴욕 북 리뷰'에 따르면 샤리에르는 악마의 섬에서 탈출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인물이다. 과거 샤리에르가 갇혀 있던 형무소에서 근무했던 간수도 "소설 속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고 진술했다. 69년 12월 작성된 24쪽짜리 법무부 보고서에는 "샤리에르가 상상 속의 모험과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꾸며 대중을 속였다"고 결론내렸다.

◆ 샤를르 브뤼니에=1901년 파리 태생으로 17세 때 해군에 입대해 시리아 전투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술집 주인을 칼로 찔러 치명상을 입힌 뒤 23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카이옌 형무소에서 조니 킹이라는 이름으로 수형 생활을 했다. 그는 그곳에서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다 작은 배를 타고 베네수엘라로 탈출했지만 넉 달 뒤 다시 체포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을 무렵에는 카누를 타고 멕시코로 탈출한 뒤 독일과 투쟁한 '자유 프랑스'에 전투 조종사로 입대했다. 카리브해에서 공을 세워 나중에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탈리아 상륙작전에 참여한 이후 준위로서 군생활을 마감했지만 다시 형무소로 보내졌다. 다행히 전쟁 중 세운 공로 덕분에 사면 판결을 받아 48년 6월 자유의 몸이 됐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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