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집중점검-4대 가격 변수] 1. 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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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유가가 연일 급등하고 있다. 28일 경기도 안양의 한국석유공사 상황실에서 한 직원이 국제유가 변동 폭을 살펴보고 있다. 박종근 기자

국제 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서면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 경제 운용계획을 짜면서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35달러를 유지할 것으로 봤지만 이달 27일까지 우리나라에 주로 도입되는 중동산 두바이유의 연평균 가격은 44달러까지 치솟았다. 특히 6월 중 평균 가격은 이미 50달러를 넘어섰다.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물가 불안도 심화할 수 있다. 연간 8억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한국은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8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 요인이 생긴다.

◆ 유가 왜 오르나=근본적인 이유는 난방유 수요가 많은 4분기에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성장이 지속되면서 원유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공급은 제한돼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올 1분기 하루 8380만 배럴이던 전 세계 석유 수요는 4분기에는 하루 평균 8590만 배럴로 210만 배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OPEC 등 산유국들의 추가 생산 능력은 하루 150만~200만 배럴에 불과하다.

생산한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시설도 충분하지 않다. 세계 최대의 원유 소비국인 미국의 정제 시설은 2차 오일쇼크가 한창이던 1981년과 비슷한 하루 1700만 배럴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골드먼삭스는 이를 '옛 경제의 복수'로 표현했다. 에너지 소비가 적은 신 경제에 도취한 나머지 정유 시설 투자에 소홀한 것이 오늘의 고유가를 불렀다는 뜻이다.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이 예상되기 때문에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의 정정 불안이나 정유공장의 가동 중단 등의 소식이 나오면 유가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날 유가가 60달러선을 넘어선 것도 OPEC 내 2위의 석유 생산국인 이란에 석유산업 개혁을 내세운 보수강경파 대통령이 들어선 데 따른 불안감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79년 이란의 혁명정부가 석유 수출을 줄임으로써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구자권 해외조사팀장은 "원유 생산이나 정제 시설을 바로 확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 유가는 당분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배럴당 7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석유 수요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유가는 50달러 중반에서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 경제에는 어떤 영향이=고유가가 계속되면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는 27일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4.6%에서 3.5%로 내렸다. 중국만 8.8%에서 9%로 올렸을 뿐 싱가포르.태국.대만 등의 성장률 전망을 모두 하향 조정했다.

리먼브러더스는 "아시아 국가들은 보조금과 세금 정책으로 유가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는 경제성장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선진국 수요 감소로 전자제품 등 수출도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이날 "유가가 장기간 지금보다 더 높은 가격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국제경제에 예상보다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의 고유가는 80년대 2차 오일쇼크 때보다는 충격이 덜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40달러를 넘었던 유가는 현재 물가 수준으로 환산하면 100달러가 넘는 만큼 아직은 견딜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는 "실질 원유가격이 오일쇼크 때보다는 낮고 주력 산업도 상당 부분 원유 소비가 적은 하이테크.서비스 산업으로 전환됐다"며 "성장률이 다소 떨어질 수는 있지만 유가가 80달러만 넘지 않는다면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원배.김호정 기자<oneby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유가 전망 어떻게 달라졌나=본지는 2월 2일자 4대 가격변수 점검 시리즈를 통해 수급 불균형, 이라크 정세 불안 등으로 고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해외 조사기관의 전망을 인용해 올해 평균 유가가 WTI는 43~45달러, 두바이유는 37달러 선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유가는 예상보다 가파르게 오르면서 WTI의 연평균 가격은 이미 50달러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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