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문형태의 대하소설『타오르는 강』은 이 작가가 그동안 쌓아올린 작가적 역량을 집대성하고 있는 역작이다. 19세기말엽 봉건조선이 붕괴되기 시작하던 격동의 시기에 전남 나주일대에서 일어났던 이른바 궁삼면사건이라는 농민수탈사건이 이 작품스토리의 골격을 이룬다.
3년간에 걸친 대한으로 폐농해버린 농민들이 농토를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구걸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보니 3년동안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의 농토가 모두 궁토로 흡수되어 버렸다는 것이 이사건의 내용이다. 이러한 사실은 소설『타오르는 강』의 소재가 역사적 무대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사실 자체의 복원만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이작품에서 작가는 노비제도의 폐지에서 동학운동에 이어지는 민란등을 포괄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모두 소설의 표면에 내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고통스런 삶의 과정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체화된 움직임으로 그려진다. 그러므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보다도 그 이면에 숨겨진 평범한 농민들의 모습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소설『타오르는 강』은 노비에서 풀려나와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는 농민들의 고통을 영산강의 도도한 흐름속에 함께 묶어 놓음으로써, 그 구조적인 확실성에 도달한다. 등장인물들은 개개의 인물보다는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집단적 의미를 갖게되고 그들의 아픔과 한은 영산강의 흐름과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 자신도 굳이 이 소설을 <영산강과 함께 흘러간 한의 민중사>로 고집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온갖 수모와 고통과 눈물을 농민들과 함께 견디어온 영산강이 아직도 삶의 공간으로 살아있다는 점일 것이다. 자신의 땅을 지켜야 한다는 농민들의 집착과 생명력이 영산강의 흐름속에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신념이 또한 소중한 것이기에, 작품이 지니는 역사적 사실의 조명보다 더욱 그 현재성의 의미도 강조될 수있음은 물론이다. <심설당간·전3권·7천5백원> 권영민(서울대교수·문학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