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아들 부럽지 않은 7살 난 외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일곱 살 짜리 딸아이가 옆에 와서는 불쑥『「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말을 아세요?』하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아신다면 나를 잘 키워주세요』하는 게 아닌가. 외딸인 자기를 잘 키워준다면 열 아들이 부럽지 않게 효도하겠다는 의미인지라 나는 웃음 지은 얼굴로『그래 알았다. 잘 키울게』하는 다짐을 해주었다.
요즈음 들어 딸애는 부쩍『엄마는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날 낳았을 때 딸이라 서운 했나요?』하고 묻는 등 부모의 반응을 민감히 살피려 드는 것이다.
딸의 그런 행동에는 주위의 영향이 큰 셈이다. 친척이나 아는 이들이 내게『딸 하나 믿고 사는 건 쓸쓸하다. 아들을 낳아야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그이도 딸 앞에서 곧잘 아들 우위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설득조로 우리 부부가 노년이 될 무렵인 2천년 대에는 아들·딸의 존재가 공평해지고 여자의 위치가 확고해져서 딸만 낳았다고 후회하는 그런 염려는 없을 테니 좀 길게 내다보고 딸 하나라도 힘껏 키워보자고 얘기한다.
이런 저런 주위의 풍경을 보며 자라고 있는 딸애는 자기가 아들보다 못한 존재인가 싶은 불안도 생기는 모양이다. 나는『엄마는 분명히 딸이 더 좋다』『너를 낳았을 때 참 기뻤다』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건 딸애를 안심시키기 위한 빈말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기도하다.
나는 남녀차별 분위기가 심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불만을 가졌고 내가 결혼한다면 절대로 아들·딸 차별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자랐다.
특히 돌아가신 할머니는 생전에 손자와 손녀의 차별이 유별하셨다.
식탁 한가운데 놓인 반찬은 모두 손자들 앞으로 밀어놓기가 일쑤였고 세배 돈까지 손자보다 손녀에겐 적게 주셨을 정도다.
그래도 돌아가실 즈음에는 손자나 손녀나 마찬가지다라는 것을 인식하신 듯 하셨는데, 내겐 그 시절이 참 흐뭇하다. 부모님도 자상한 마음은 딸이 더 낫다고 하시는데 나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승리의 미소인양 혼자 웃음 짓곤 한다.
이제 나에게 한가지 숙제가 있다면 그것은 딸을 잘 키워 노인이 된 그이의 입에서『과연 딸도 아들만 못한 건 아니다』는 말을 꼭 듣는 일이라고나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딸아이를 바르게 잘 키워야만 할 것 같다. 모처럼 자기를 잘 키워 달라는 딸애의 당돌하고 깜찍한 당부도 있고 보니 새삼 다짐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