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청소년 폭력성 위험수위 넘어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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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0대 청소년들의 '인명 경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수업을 받는 학우들에게 별 죄의식 없이 폭발물을 던지거나 부모나 형제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일본 언론들은 "폭력적인 인터넷 게임과 만화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의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교육제도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10대 청소년에 의한 부모 살해 및 미수사건이 37건이나 발생했다.

◆ 실태=최근 2주 사이에 10대가 엽기적인 사건을 세 차례나 저질렀다. 23일에는 후쿠오카(福岡)의 중학교 3년생(15)이 자신을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형(17)을 집에서 칼로 마구 찔러 숨지게 했다. 형이 맨션의 옆집으로 도망가자 뒤쫓아가 수십 곳을 찌르고 욕조에 물을 채워 수장시켰다. 이 학생은 범행 후 별다른 죄의식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18일에는 도쿄에서 고교 1년생(15)이 건설회사 사원숙소의 관리인으로 일하는 부친과 모친을 아령과 칼로 살해했다. 그러고 증거 인멸을 위해 가스폭발까지 시켰다. 이 학생은 범행 직후 온천 휴양지로 가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검거된 후에도 "아버지가 심부름을 많이 시킨 데다 전날 '넌 나보다 머리가 나빠'라고 말한 데 화가 나 그랬다"고 태연하게 범행동기를 밝혔다. 지난 10일에는 야마구치(山口)현의 한 고교에서 3학년 학생(18)이 수업 중 옆 반 교실에 화약을 넣은 병을 집어던져 5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학생은 "폭탄을 사용해 적을 쓰러뜨리는 만화에서 나를 괴롭혀온 친구를 혼내 줄 힌트를 얻었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폭발물 제조방법을 알아냈다. 이 학생은 "예상보다 폭발물의 위력이 컸다"며 놀라워할 뿐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 원인.대책=일본 언론들은 "직접적인 살해.범행 동기라고 단정하긴 힘들지만 범행을 저지른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폭력적인 인터넷 게임이나 사이트에 푹 빠져 있었다"고 밝혔다.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도쿄세이도쿠(東京成德)대학 후카야 마사시(深谷昌志) 교수는 "요즘 청소년들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무장돼 있어 자신의 방 안에서 모든 생활을 끝내게 됐다"고 지적했다.

후카야 교수는 "실제로는 청소년의 불만이 안으로 쌓여가고, 그러다 탈선을 자극하는 인터넷 세계와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순간 청소년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청소년 가정교육포럼'의 도미타 후지야(富田富士也)대표는 "요즘 청소년들은 예민하고 자존심이 세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도 말을 가려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공교육기관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인성교육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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