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독서가는 멸종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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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2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들녘, 각 권 352쪽·408쪽, 각 1만1000원

상상해보라, 이런 카페를. 마실거리로는 먹물 포도주에 삼류소설 커피가 있고, 뮤즈 키스 코코아와 착상의 물이 있다. 먹을거리로는 문자꼴의 국수나 버섯으로 만든 음절샐러드가 준비되어 있다. 즐거운 눈길로 차림표를 훑어보다 주문했다. 영감이라는 이름이 붙은 바닐라 밀크 커피 한 잔과, 시인의 유혹이라는 단과자를 말이다.

아무렴, 현실에 이 카페가 있으리라 믿지는 않을 터. 오로지 발터 뫼르스가 상상의 거푸집에서 찍어낸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만 있을 뿐이다. 이 장편소설은 책벌레들을 한껏 유혹하고 있다. 책과 문학, 출판과 고서점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미텐메츠는 스승 단첼로트의 유언대로 부흐하임이라는 도시에 가기로 했다. 신비에 싸인 한 시인을 만나 큰 깨우침을 얻기로 한 것이다. 이 도시의 매력은 거리마다 즐비한 고서점에 들러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책이 넘쳐나다 보니 진귀한 책들이 잘못 분류돼 값싸고 저속한 책더미속에 묻혀 버리는 일이 왕왕 있다. 눈밝은 이에게는 보물을 거저 얻을 수 있는 기회다. '편집자의 거리'도 둘러볼만하다. 그러나'잊혀진 시인들의 공동묘지'를 지나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한때 뮤즈의 사랑을 흠뻑 받았던 시인들이 몰락한 광경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이 있는 골목'은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는 게 낫다. 먹잇감으로 점찍은 작가가 파멸할 때까지 몰아세우는 비평가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그렇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무대는 화려하고 번듯한 지상이 아니라, 욕망의 용광로가 들끓는 지하의 미로다. 그 세계는 음모와 배신으로 얽혀 있고, 그곳으로'유배'된 주인공은 긴박한 상황에 내몰리다 극적인 반전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지은이의 상상력이 빚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소설의 졸가리를 뒤쫓다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미텐메츠가 땅위로 올라오는 순간, 무릎을 치며 이 작품의 상징과 주제를 이해하게 된다. 미리 말해버리면, 지은이는 거대한 출판자본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문화적 창조성과 다양성을 시장성의 이름으로 '학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는 세력은 부흐링족으로 상징된 깨어있는 독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고 배우기 위해서" 책을 찾는 무리다. 또 있으니, 자본과 타협하지 않는 소수의 작가들이다.

해피 엔딩이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을 덮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미텐메츠가 공룡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어느날 멸종되어 버린 것이 공룡의 운명이지 않던가. 혹, 문학이나 책이 이미 공룡의 길을 되밟고 있다고 지은이는 예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이 소설은 해오름의 강렬한 화려함이 아니라, 해질녘의 처연한 황홀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이 끝나니, 악몽이 시작되었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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