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햇살이 이렇게 두렵고 조심스러운 것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유난히도 조용하고 포근했던 지난겨울, 그 겨울을 보내고 나니, 또 유난히도 일찍 서둘러 봄이 달려와 무겁고 두꺼운 겨울 커튼을 열어 젖힌 창문을 통하여 밝고 행복한 햇볕을 무진장 집안으로 쏟아 넣는다.
『내 앞에 막아선 당신의 그림자로 하여 햇볕이 가려졌으니 나의 앞에서 비켜 서주시오』
오늘 같은 햇별 밝은 봄날이었을까? 옛날 그리스의 철학자「디오게네스」는 마침 해바라기를 하고 앉아 있다가 제왕(제왕)으로서 친히 자신을 찾아와 소원을 묻는「알렉산더」에게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지만, 「디오게네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루 끝에 머물러 조용히 아른대는 봄 햇볕을 바라보고 앉아있으면 참말로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는 상태, 완전한 충일감(충일감)에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느슨하게 풀어진다.
우리 집 거실의 넓은 창은 동남쪽을 항하고 있어 언제나 아침에 떠오르는 첫 햇살을 집안으로 불러들인다.
저만큼 언덕에 올라앉아 우리 집을 내려다보고 있는 앞집지붕 위에서 불쑥 솟아 오른 아침해는 아무 것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우리 짐 안으로 뛰어들어 창 앞에 줄 세워 놓은 화초들의 푸른 잎으로부터 양탄자 위에 내려앉은 미세한 먼지의 입자까지 환하게 떠올리며 살아서 숨쉬고 움직이고 있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언제나 새삼스럽고 감격스러운 것이 되게 해주고 있다.
9시가 넘어서야 그것도 마지못해 굼실굼실 기어들던 겨울 해와는 달리 봄의 햇볕은 날렵하고 싹싹하여 8시가 채되기도 전에 벌써 집안으로 들어와 제각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식구들에게 한껏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는다.
재잘재잘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남편도 서둘러 출근을 해버리고 난 후의 텅 빈 집, 그 집을 가득 채운 환한 햇볕, 나는 그 따듯하고 감미로운 봄의 햇볕의 끝없는 참견 질을 받으며 설겆이를 끝내고, 방을 쓸고 걸레질을 하며, 화초에 물을 주고, 신문을 펼쳐 들고 뜨거운 차(차)도 마시며, 또 더러는 전축에 음악을 걸기도 한다.
때로는 이미 앞마당에 당도한 봄빛이 소곤소곤 잠든 생명을 깨워 일으키는 모양을 하염없이 내다보며 문득 아득한 곳에서 울려오는 피리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것은 되살아나기 위하여 절규하는 죽은 자의 노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숨어살면서 몰래 숨죽이고 우는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또는 억울하고 가엾은 사람들의 깊은 한숨, 그 옛날 고향 사람들이 부르던 슬프고도 아름다운 수심가(수심가)같기도 하다.
언 땅이 녹고 얼었던 물어 풀려 돌돌 거리면 언제나 흉흉한 소문들만 온 동네를 창궐하여 어른들은 쉬쉬 근심스런 한숨을 쉬던 어린 때, 밤새 고열(고열)에 시달리다가 늦잠을 깨고 일어난 나에게 어머니는 흰죽에 달래간장을 얹어 내 입에 떠 넣어 주시며 알게 모르게 한숨을 쉬시던 생각이 난다.
그때에도 한지를 바른 미닫이 창문을 통하여 들어온 햇살은 오늘처럼 따듯하고 황홀한 것이었다.
목안이 부어 억지로 달래향기와 함께 흰죽을 삼키며 나는 참말로 완전한 행복,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있다는 자각과 감격으로 괜히 소리내어 울었다.
아름다움과 눈물, 행복과 슬픔은 왜 이렇게 늘 가까운 것일까?
이 아침 환한 햇볕을 받으며 더 없이 안락하고 행복하면서도 이렇게 슬프고 눈물겨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봄의 햇볕이 되살리는 생명을 보면서도 이렇게 두렵고 조심스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득하고 먼 봄의 저쪽, 그곳에서 되살아나서 달려오고 있는 온갖 것, 그것의 찬란함과 아름다움과 두려움과 공포를 봄날의 햇살을 받아들이듯 조용히 맞아들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