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LSI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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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과 일본은 요즘 소리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일명 「초LSI전쟁」으로 불리는 이 싸움은 초대규모 집적회로(초LSI)의 기술·생산·판매에 이르는, 가히 전면전이다. 일본은 지금의 전황을 펄 하버(진주만)기습에 비유하며 오히려 미국을 안심시키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쪽의 반응은 그보다는 심각하다.
최근 미국 상무성이 분석한 『82년도 미국산업전망』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제 반도체 64K비트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80%나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보다 10% 포인트가 늘어난 수치다. 문자 그대로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신문사진에 소개된 「64K비트」의 모습은 폭이 2cm미만에 거미다리 같은 것이 16개 붙어있는 철물이었다. 그러나 이 실리콘 칩 속엔 6만4천비트의 정보를 저장 할 수 있다.
「비트」(BIT)는 컴퓨터가 취급하는 데이터의 최소단위로 이진법숫자(Binary Digit)의 약자. 지금의 컴퓨터는 8비트를 가지고 알파베트의 한 글자를 표시할 수 있다.
문제의 64K비트는 불과 6mm두께의 실리콘 칩 기판에 트랜지스터나 콘댄서등의 소자를 15만6천개나 집적하고 있다. 만일 트랜지스터 1백만개급의 초LSI가 개발되면 지금의 대형컴퓨터는 보스턴 백만한 크기로 줄일 수도 있다.
64K비트의 실리콘 칩 기판위에 거미줄처럼 얽힌 선의 굵기는 3미크론(1천분의 3mm)이다. 우리 머리카락의 15분의 1정도. 이런 초LSI는 완전 밀폐된 방에서 우주복과 같은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작업실의 공기가 얼마나 맑아야 하는지는 거의 추상적 숫자로 밖엔 설명할 수 없다. 1입방피트(30입방cm)당 0.5미크론이상의 먼지 한 개 이하. 그러니까 1만분의 5mm 크기의 먼지 한 개 이상도 허용되지 않는다.
가령 담배연기의 입자는 2내지 3미크론. 적어도 그 입자의 4분의 1내지 6분의 1의 먼지가 한개이상 있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반도체의 세계는 우리의 일상적인 감각으로는 신비의 경지다.
미국의 상무장관「볼드리지」는 이런 실리콘 칩을 『80년대의 석유』라고 명명한 일도 있었다.
인류의 미래산업을 지배할 에너지라는 뜻이다.
I970년대의 TV는 전자부품의 수가 l천개나 되었다. 그러나 80년대에 접어들어 그 수는 3분의 l인 3백60점으로 줄었다. 실리콘 칩의 혁명이다.
IC(집적회로)는 지난 7O년 이후 매년 2배의 페이스로 집적도를 높여왔다. 불과 10년 사이에 2백54비트에서 오늘의 64K비트로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양산이 가능해지면서 값은 10년 동안에 1백분의 1로 떨어졌다.
그러나 부가가치를 보면 철이 1t당 3백달러인데 비해 초LSI는 lt에 1천만달러로 무려 3만6천배나 된다.
미일전쟁의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미스터리 속에라도 빠져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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