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뛰다보면 하루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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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직장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 어느 부서를 가더라도 단정한 옷차림에 앳된 모습의 신입사원들이 새 바람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기업에 신선한 새피를 공급하는 신입사원들은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치열한 공개경쟁시험을 치르고 입사한 엘리트들로 대기업과 은행, 중소기업을 합쳐 줄잡아 1만여명. 이들은 대부분 한달 남짓한 신입사원교육을 거치면서 새 직장의 창업이념과 세일즈를 익혔으며 올 봄 대학문을 나서면서 자리를 맡았다. 그러나 아직은「수습」의 딱지가 붙은 햇병아리 사원. 때문에 일손은 느리고 간혹 실수도 저질렀지만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열의에 지칠줄 모른다.

<새 직장의 하루>
S기업수습사원 장효권군(27). 별 보고 집을 나와 달 보며 돌아가는 고달픈 직장이지만 상아탑인 캠퍼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치며 새로운 인생을 배운다.
지난해 가을학기 10대1이 넘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공채된 장군은 한달남짓 군대내무생활에 버금하는 합숙훈련과 백화점외판등 실기(?)를 익히고서야 수출입업무를 다루는 현업 부서에 자리를 잡았다.
장군에게 주어진 업무는 수입신용장개설과 사후관리. 출근시간은 아침8시30분까지로 정해져 있지만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실무영어를 익히기 위해 새벽6시께 집을 나서 외국어학원에 들른 후 회사에 가야하기 때문에 아침밥을 굶기 일쑤다.
상오8시30분. 사내방송을 통해 울려 퍼지는 사가(사가)에 중압감(?)을 느끼며 조회를 끝내면 숨돌릴 사이 없이 선배사원이나 과장이 일거리를 내민다.
은행문을 열때까지 노닥거릴 시간이 있지만 서둘러 회사문을 나선다.
한발이라도 먼저가 창구를 지키면 일 처리가 수월하고 경쟁사 직원을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걸음으로 20분 남짓 걸리는 주거래은행에서 가쁜 숨을 가누며 은행로비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커피한잔을 마시면 어지러운 심기도 가라앉는다.
일이 밀릴때면 하루 5∼6차례 은행을 오갈때도 있다.
며칠전엔 주거래은행에서 결제할 수표를 엉뚱한 은행창구에 내밀어 창피를 당한적도 있다. 하오5시 은행문을 닫으면 바쁜 일과도 대충 끝난다.
그러나 퇴근시간은 대중이 없다.
작업처리와 내일을 위한 전략회의가 계속될때면 밤10시 넘어 회사문을 나서는 경우도 잦다.

<사원교육>
기업마다 신입사원에게 창업이념과 사풍(사풍)을 익히도록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합숙훈련을 포함해 모두 5주의 교육을 실시하며, 쌍용이 30일, 대우가 12일, 럭키가 6일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내용은 대우는「대우인의 의식」을 심기 위해, 삼성은 「삼성정신의 고취」와 건전한 직업관 확립등으로 모두 애사심고취, 사원간의 일체감 확립 및 창업주의 그룹정신 심기에 애쓰고 있다.
교육장소로 쌍용은 용평스키장, 삼성은 용인자연농원, 대우는 부천연수원등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정해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훈련은 엄하고 알찬편.
저명인사의 정신훈화를 비롯, 실무중역진의 실기이론강의, 사장·창업주와의 대화등이 있고 아침저녁 구보와 야간산행등으로 심신을 단련한다.
D그룹 신입사원 강덕수씨(28)는 분임토의중에 잡담을 했다해서 자정이 넘도록 연수원밖에서 구보와 토끼뜀등 체벌(?)을 받은 것이 잊혀지질 않는다며 얼굴을 붉혔다.

<초봉>
대부분 기업이 올해 봉급을 조정치 않아 정확한 초봉은 알 수 없지만 지난해 봉급에서 7∼8%선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초봉은 대졸사원의 경우 삼성 26만5천원, 대우· 럭키 25만원 선.
3월부터 대우는 8%, 럭키는 7%, 쌍용 9%정도 초봉을 올릴 예정

<부서 배치>
럭키의 경우는 면접을 거쳐 근무지역등을 고려, 지원자의 희망에 따라 각 사에 배치하고 있다.
대우는 신입사원 모집때부터 방계회사들의 요청에 따라 전공별 인원을 계획하고, 신입사원의 l· 2· 3지망에 따라 배치한다.
하지만 일부회사는 빈자리 메우기가 우선. 특히 고졸 여사원의 경우 희망부서는 말할 기회조차 없는 형편.
올해 고려대경영학과를 졸업해 대우 인사과에 배치된 전준직씨(24)는 자신은 원하는 부서에 배치되지를 못했지만 회사 나름대로의 신입사원 개개인의 사정을 상당히 고려한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이과출신의 경우 신입사원의 희망과 전공이 거의 반영된다.
신입사원 권석철씨(26·삼성물산합판과)는 『모든 일이 서툴고 어설프지만 학생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고 직장생활의 불안을 털어놨다.
하지만 모든 신입사원들은 촛불을 켜들고 사가(사가)를 합창하던 신입사원 연수교육의 마지막 날 밤을 생각하며 하나의 직장인으로 성숙해 가고 있다.

<전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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