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미술학원서 겪었던 실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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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 삼월에 큰 아이가 입학을 한다.
누구나 느끼는 일이겠지만 나는 이일로 인해 엄마가 된 이후 세번째 가슴 벅찬 감동으로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이다.
엄마 소리를 최초로 듣던 때, 아이의 앞니가 처음 빠질 때와 비슷한 뿌듯한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가 꿈에조차 그리던 학교를 바라보면서 나는 그 감동 뒤로 살큼 내려앉는 불안도 쉽사리 넘길 수가 없었다.
이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되어 버린 조기교육이라는 것.
나는 나의 아이가 얼마만큼 알맞는 조기교육을 받고 취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수치로 따져볼 재간이 없는 것이다.
한때 나는 아이의 손을 끌고 아파트 앞의 상가에 있는 몇개의 학원을 맴돌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받았던 충격으로 인해 나는 나의 아이에게 꼭 필요한 공동생활의 집단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아주 어린시절, 내가 받았던 미술교육에 대한 기억― 어른들은 생각지도 못할 심한 좌절감 및 갈등―이 생생했고 또 십년 가까이 미술교사로 재직해 있던 경험등으로 누구보다도 아이의 조기교육 대해선 조심스럽던 중 전인교육을 강조하던 한 미술학원엘 찾아갔던 것이다.
『A대학을 졸업했다는 사람이 왜이리 많습니까? 미술학원 선생마다 다 A대학 출신이라는군요.』
A대학을 졸업했다고 알려져 있는 원장선생이 타학원 선생을 두고 한 소리였다.
A대학은 나의 모교이기도하여 나는 반가와 물었다.
『몇년도 졸업이시죠?』
『네, ○○년도입니다.』 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나는 바짝 호기심이 일었다.
바로 내 졸업연도와 일치했던 것이다. 『전공이 무엇이셨나요? 저도 그 학교를 같은 해에 나왔어요.』
나는 그렇게 물을때까지도 그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나와 전공까지도 일치되게 대답했던 운수사납던 그 남자의 얼굴을 겨우 40명밖에 안되는 과동기중에서 기억해 낼 수 없게되자, 나는 나대로 당황해서 어쩔줄 몰랐고 그 남자는 그 남자대로 그때부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었다.
그 이후로 신문에 수없이 끼워져 오는 안내문에서 마구 강조되는 조기교육의 필요성, 혹은 일류강사진 초빙등의 문귀들을 볼 때마다 어린 아동도서 세일즈맨들이 현관에서 외치는『취학전 아기들 교육에 대해서 상담해 드립니다』 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자꾸 아뜩아뜩해짐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경기도안양시석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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