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군사력 확장 경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옛 소련권에 속했던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지역에서 러시아와 미국이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풍부한 에너지 자원과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닌 이 지역으로 군사력 확대를 꾀하자 러시아는 전통적인 세력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에 옛 소련권을 강타한 서구식 시민혁명 열기는 미.러의 세력 다툼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 미국의 세력 확대=그루지야의 야당인 '그루지야 행동당'의 바흐탕 탈라하제 당수는 18일 "그루지야 동부에 있는 시라크 군용 공항을 미군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친미 성향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에 반대하는 탈라하제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그루지야를 방문한 직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며 "시라크 공항 주변에 사는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한 가구당 5만 달러(약 5000만원)라는 유례없는 보상금이 제안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시라크 공항은 옛 소련 공군이 주둔했던 곳이다. 지금은 인프라 시설들이 파괴된 채 방치돼 있다. 지난달 30일 그루지야 당국과 2008년까지 그루지야 주둔 자국군을 철수키로 합의한 러시아는 이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그루지야와 인접한 아제르바이잔에도 군사기지를 설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20일 "미국과 아제르바이잔 양국이 군기지 건설에 대한 합의를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은 바쿠(아제르바이잔)~트빌리시(그루지야)~세이한(터키)을 잇는 BTC 송유관 보호를 명분으로 이 지역에 대한 미군 파견을 주장해 왔다. 지난달 말 개통된 BTC 송유관은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원유를 서방으로 수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 미 - 우즈베키스탄은 균열 조짐=워싱턴 포스트는 15일 "우즈베크 남동부 하나바드 공군기지에 배치돼 있던 미 공군 수색기 HC-130과 수송기 C-17 등이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와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공군기지로 각각 이동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최근 우즈베크 정부가 미 공군기들의 야간비행을 금지하고 비행 횟수를 제한함에 따라 이 조치가 취해졌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미국이 지난달 발생한 우즈베크 안디잔 유혈사태에 대해 비판 수위를 높이자 우즈베크 정부가 비행 제한 조치를 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도 이날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를 간접 시인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미군에 하나바드 공군기지를 제공한 우즈베크와 각별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안디잔 사태 국제진상조사단 파견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양국 간 틈이 벌어졌다. 미국이 옛 소련권 국가들의 시민혁명을 부추기고 있는 점도 우즈베크의 카리모프 독재정권을 불안케 했다.

◆ 미국에 맞서는 러시아= 러시아는 안디잔 사태 이후 카리모프 정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 옹호하고 있다. 또 카프카스 지역의 미군 세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그루지야에서 철수하는 자국군을 인접 아르메니아로 이동배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10월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에 주둔 중이던 201 기계화 보병사단을 확대 개편, 새로운 군사기지를 창설한 바 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