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이번엔 과거사 싸고 '막말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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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검찰과 경찰이 이번엔 '과거사 논쟁'으로 맞붙었다. 발단은 지난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에게 법무부 임채진 검찰국장 명의로 보낸 두 개의 문건이다.

특히 '검사 수사지휘권의 역사적 성격(10쪽)'이라는 문건에서 "일제 강점기 경찰은 식민지 수탈의 도구로 경찰의 자의적 수사권 행사는 조선 민중의 공포의 대상"이라고 폄훼한 뒤 "독립운동 관련자 등 식민지 범죄의 수사와 종결은 경찰 주도로 이뤄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찰은 일본인 법률가를 해임하고 독립투사의 변론을 담당한 한국인 법률가를 충원한 반면 경찰은 식민경찰 종사자들을 다시 채용했다는 것이다.

문건은 이어 "경찰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형사소송법이 제정되게 됐다"며 "검사에게 수사권을 준 것은 경찰 파쇼 견제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경찰은 군.정보기관과 함께 체제수호의 일익을 담당한 대가로 비약적으로 조직이 팽창, 건국 당시 2만5000명이던 경찰공무원이 현재 15만 명을 웃돌 정도로 비대화됐다고 지적했다.

또 중앙집권적인 경찰 조직이 권력의 의지에 따라 인권침해의 첨병이 될 가능성에 대해 국민의 의구심이 상존한다며 그 사례로 4.19 발포, 시국사범의 대량 검거,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부천 성고문 사건 등을 들었다.

법무부는 이를 근거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경찰 수사의 통제와 보완을 위해 검사의 수사지휘가 필수적이라고 결론내렸다.

이 같은 표현이 문제가 되자 법무부는 20일 "이번 문건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생겨나게 된 역사적 경과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경찰을 비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소병철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은 "자료에 나오는 '경찰 파쇼'용어는 1954년 형소법 제정 당시 엄상섭 국회의원의 국회 발언을 원용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추진 현황'제목의 또 다른 문건에서 법무부는 지난해 9월 시작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경찰의 무리한 주장 때문에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책임을 경찰에 떠넘겼다.

이에 맞서 경찰은 '검찰의 법사위 배포자료의 문제점'이라는 문건을 내고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경찰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체제 유지에 공헌한 대가로 현재 검찰 내 차관급 인사만 40여 명"이라고 비판했다. 검찰도 '권력의 시녀'로 불렸던 과거에는 떳떳할 수 없는 처지일 텐데 경찰을 비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경찰 파쇼'라는 과격한 표현도 부적절했고 수사권이 조정되면 마치 15만 경찰이 검찰의 통제 없이 무소불위로 수사권을 휘두를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조강수.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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